행동하는 책읽기

타인을 소모하는 선택도 자유라 부를 수 있을까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소라언냐 2026. 2. 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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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by William Somerset Maugham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모티브가 된 소설

표지의 그림은 누가 봐도 타히티를 배경으로 그린 고갱의 그림체를 떠오르게 한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고갱의 그림은 알아볼 만치 그의 그림은 스타일이 명확하다. 혹시 그가 모티브가 된 소설일까?

 

역시나 소설 속의 등장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는 고갱을 차용했구나 단박에 알아차릴 만치 비슷하다. 증권 브로커로 풍요로운 중산층의 결혼생활을 하던 중 공황으로 실직 후 경제적으로 궁핍해지자 아내와 자식이 떠나고(소설에서는 본인이 떠난다), 전업 화가가 되어 파리의 화가들 무리와 보헤미안 생활을, 생계를 위해 파나마 운하에서 인부로도 일했던 그. 마침내 원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섬 타히티로 가서 13세의 소녀와 동거하며 그림을 그린다. 심장병과 매독 증세로 고통받던 그는 건강이 악화되자 비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54세의 나이에 심장병과 매독 증세로 사망한다.

 

 

초월과 세속

<<달과 6펜스>>라는 제목. 소설 어디에도 달이나 6펜스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유추해 볼 수 있다. 마음은 순수해도 그저 팔리는 그림만을 그려 나름 풍요로운 삶을 사는 화가 스트로브, 육체적 관계를 중요시했던 그의 아내 블란치,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는 저주했지만 사망 이후 천재 작가로 명성을 얻자 그의 아내임을 과시하는 스트릭랜드 부인처럼 세속적 가치를 좇는 이들의 속물근성에 대비해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 본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추구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달에 가 닿는 광기를 보여준 천재성을 가진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갱이 모티브가 된 등장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는 40대 초반까지 증권 브로커로 큰돈은 벌지 못해도 가정을 이루고 지낸다.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중시했던 그의 교양 있는 아내와 듬직한 아들 그리고 착한 딸. 누가 봐도 단란했던 가족은 스트릭랜드가 파리로 떠나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를 남긴 채 떠나면서 부숴지게 된다.

 

분명 여자가 생겨 파리로 도망친 거라 믿었던 스트릭랜드 부인은 소설 속 작가이자 지인인 화자 나에게 자신 대신 남편을 만나 상황을 파악해 주기를 부탁한다. 여자와 함께 고급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런던에 퍼져 있는 소문과 달리 방 한 칸짜리 허름한 숙소에서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스트릭랜드. 그가 떠난 이유가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된다. 남겨진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항변하는 나에게 그는 ‘지난 17년간 먹여 살리려 일했으면 충분했다’라고 강변한다. 자신은 지금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 없고, 할 수가 없다며.

 

파리에 머무를 때마다 그를 만나게 되는 나. 나는 사람 좋은 화가 스트로브도 만나게 된다. 언제나 스트릭랜드가 돈을 빌려 달라면 빌려 주고, 아플 때에는 집으로 데려와 병간호까지 도맡아 해주는 그. 그 역시 화가이지만 몽마르트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팔리는 화풍을 그림들만 그려 팔 뿐 예술가로서의 투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그를 스트릭랜드는 대놓고 무시한다. 하지만 스트로브는 일찍이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알아봤으므로 그렇게 거칠게 대하는 그를 왜 챙겨 주느냐는 나의 면박에 “천재는 조심스럽게 대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는 자신의 대놓고 남편을 무시하는 스트릭랜드를 챙겨주려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중하게 병들었으니 집으로 데려와 간호하자는 그의 말에 이상하게 스트릭랜드는 만나면 불안하고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은 암시를 느낀다며 반대하지만 자신 역시 남편의 도움으로 결혼 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을 암시하는 스트로브의 말에 마음을 바꿔 스트릭랜드를 극진히 간호하기로 한다.

 

병간호 중 블란치는 부드러운 자신의 남편과 달리 스트릭랜드의 강인한 모습에 빠지게 되고 결국 그를 따라 나서겠다 스트로브에게 말한다. 자신의 부인을 너무나 사랑했던 스트로브는 그냥 자신의 화실에서 스트릭랜드와 블란치가 살도록 제발로 떠난다.

 

블란치와 스트릭랜드는 오래 같이 살지 못하고 스트릭랜드가 떠난다. 예감처럼 그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음독 자살을 시도한 블란치. 결국 그토록 매달렸던 스트로브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친다. 그 둘이 지냈던 자신의 화실에서 발견한 블란치의 누드화. 극도로 흥분한 스트로브는 스크래퍼로 그림을 찢어 버리려던 찰나 그림에 나타나는 예술가의 천재성을 보게 된다.

 

 

타히티에서의 삶

이 모든 상황을 이야기로 전해 듣고 겪은 나는 몇 년 후 타히티로 떠나 이미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스트릭랜드에 대해 수소문하고 듣게 된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타히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진즉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헐값에 사두지 못한 것을 못내 애석해하며 그에 대해 증언해준다.

 

타히티로 온 스트릭랜드는 일감을 찾아 부두를 전전했고, 그곳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테헤아의 소개로 17세의 소녀 아타와 동거하며 그림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아타.

 

숲에 있는 아타의 집에서 아이 둘을 낳고 기르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며 천국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던 스트릭랜드. 나중에는 타히티의 풍토병과도 같았던 문둥병에 걸리게 되지만 끝까지 그를 떠나지 않고 살펴주는 아타.

 

죽기 일 년 전 그는 실명해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자신이 기거하던 방의 사방 벽을 온통 그림으로 채워 넣는데, 그 그림에 대해서는 이 사실을 전해 주었던 의사와 아타와 그리고 어린 아들 밖에는 본 이가 없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서 본 바 없는 그림. 스트릭랜드가 유언으로 자신이 죽고 나면 집을 불살라 막대기 하나까지 다 탈 때까지 지켜봐 달라고 했으므로.

 

 

타인을 소모하는 선택도 자유라 부를 수 있을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신의 천재성을 눈먼 상태에서 완성한 후 불질러 버렸던 천재 화가. 작가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도덕을 초월하는 예술혼을 그려낸다. <<달과 6펜스>>는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인간’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인물이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이 서사는 더 이상 낭만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 역시 응당 누렸을 가족의 돌봄은 철저히 무시한 채 ‘나는 17년간 가장으로 살았다’고 선언하며 단칼에 버리는 태도, 자신을 아끼고 존중해주는 타인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경멸하는 오만함,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장면들은 자유라기보다 특권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타히티에서 그가 백인 앵글로색슨 남성이었기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 없이 열일곱살(실제 고갱과 동거했던 소녀는 13세였다) 소녀와 동거하며 그녀의 집부터 모든 수발을 무상으로 누렸던 그. 이전에 읽었던 <<뜻밖의 미술관>>에서 알게 됐던 천재 화가 고갱의 ‘19세기 하비 와인스타인’ 같은 이면을 보자면 그가 누린 이 모든 자유가 타인의 착취 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을 바꾸는 불편하고 위험한 그림들 << 뜻밖의 미술관 - 김선지 >>

뜻밖의 미술관 작가를 소개합니다‘작가라는 황홀한 명칭으로 불리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돌아 글쟁이가 되었다'는 작가 김선지는 미술사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모으며 글을 써오던 중 한국

thebrownbottle.tistory.com

 

타인을 소모한 선택도 자유라 불러줘야 할까. 그런 자유 위에서 꽃 핀 예술 작품을, 그러한 작가를 신화화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있는 이유를 이해하면서도, 그 안에 내장된 예술가 신화까지 함께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 소설이 예술가의 해방을 그리지만, 그 해방이 누군가의 속박 위에 있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예술가의 파괴성이 ‘천재성’으로 포장되는 글에서 누구의 고통을 지우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므로.

 

 

 

알고리즘인지 어떤 연유에서인지 서머싯 몸의 작품을 추천하는 글들을 많이 접해 <<면도날>>과 <<달과 5펜스>>를 연달아 읽었다. <<면도날>>의 래리나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모두 ‘다 버리고 자기 갈 길 간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회적 구조를 지운 채 개인의 영성 또는 예술혼만을 불태워 초월한 이들의 이야기는 공허하다. 현실의 중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기에.

 

고전을 읽는 낙은 지금과 동떨어진 시공간에서도 나와 공명하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지금 곁에서 대화하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 점을 생각해본다면, 글쎄... 서머싯 몸의 두 작품은 나의 고전 리스트에 보관하기는 주저하게 된다는 평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