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소라언냐 2026. 3. 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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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by Clinton Richard Dawkins (리처드 도킨스)

 

 

고전의 반열에 오른 과학책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어쩌면 과학자가 이렇게나 아름다운 문체로 글을 쓸 수 있는지 그리고 과학적인 사실을 그토록 감동스럽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감탄하면 읽었던 반면 리처드 도킨스의 흥미롭기 짝이 없던 <<만들어진 신>>을 끝까지 읽지 못했던 이유는 뭐랄까 맞는 말을 하는 건 알겠는데 이상하게 듣는(읽는) 사람 기분 긁는 묘한 말투 때문이었던 듯. 하지만 책을 마치고 난 후 만난 마지막 문단은 <<이기적 유전자>>, 이 책 끝까지 읽기 참 잘했다 느끼게 해줬다. 

우연이라기에는 실제적으로 너무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그것은 이들 인과의 화살이 뭉쳐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복제자는 더 이상 바닷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이들은 거대한 군체, 즉 개체의 몸속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뭉쳐진 자기 복제자가 표현형에 초래하는 결과는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개체에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우리에게 이다지도 낯익은 개체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개체가 아니라 흐름이 본질

나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불멸의 자기복제자가 발현될 수 있는 인연과도 같은 환경이 맞아떨어져 나란 존재가 지금 잠시 존재한다는 사실. 나라는 존재는 전혀 특별하지 않고 자기 복제자라 불리는 유전자가 생존하고 번식, 운반하는데 사용되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 최재천 박사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교수실에 찾아와 삶이 너무나 허무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젊은 제자들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시작도 알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속의 한순간에 불과한 나. 누군가에게는 차갑게만 읽혔을 내용이 이제 나이가 든 탓인지 허무하다기보다는 어깨를 가볍게 해주는 느낌이다. <<싯다르타>>의 강물 비유가 저절로 떠오른다. 수천수만명의 얼굴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겹치고 또 나타나는 끝없는 흐름 가운데 여전했던 강물의 흐름. 개체가 본질이 아니라 흐름이 본질이라는 사실. 

 

생존 기계이자 개체인 나의 몸 속에 있는 불멸의 유전자들을 상상해본다. 독특한 나만의 신체적인 특징들과 기질 그리고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 나의 배우자와 내 주위 환경에까지 ‘확장되어 표현되어 있는’ 모든 것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던져져 태어난 존재라지만 내가 태어나기까지 그토록 수많은 인연들이 얽히고 얽혀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내가 선택한 것은 무엇이고 된 것은 무엇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다. 진실로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무아가 읽힌다.

 

 

과학자의 입을 빌어 읽은 철학

나라는 개체는 유전자 + 환경 + 밈(문화)으로 이루어져 지금 잠시 나타난 존재란 사실. 존재의 구조를 철저히 해체해 보여준 책이라 생각한다. 삶의 스케일은 좀 더 커졌지만 역으로 더 가벼워진 느낌. 불교의 연기설을 과학자의 입을 빌어 듣는 듯한 기시감. 과학과 철학이 한 갈래에서 나온 학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책.

 

지금까지 다윈의 자연선택은 너무나 오해받았다. 현생 인류가 될 수 있기까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 않게 진화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코스모스>>가 짚었듯 그러한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도 꼭 그러한 맞춤한 속도와 상태로 진화되었다는 것이 뭔가 인류는 특별하기에 높은 분의 은총으로 생겨난 필연적인 존재라는 사실의 반증인 것마냥 오용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인 도킨스의 이 책은 우린 기실 아무것도 아닌 불멸의 유전자 프로그램을 전달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는, 냉철하지만 한없이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는 깨달음을 준다.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

하지만 현실을 잠깐만 돌아봐도 이게 다 뭔가. 그래도 인간은 문화라는 유산도 함께 받기에 유전자의 폭거에 반항할 수 있다면서, 지금 세계의 정세와 눈 먼 기술 발전은 유전자 프로그램대로만 살다 가는 존재들에 비해 당최 뭐가 나은가.

 

<<AGI, 악마인가 천사인가>>에서 작가 김대식은 서늘한 예언을 했다. 

영생의 방법을 찾았는데, 불행히도 그 혜택은 정작 우리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먼 미래에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AGI 시대엔, 잠시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베타 테스팅이라고 부를 것이라는 자조 섞인 전망도 있습니다. 진정한 지능은 인공지능이고, 생물학적 지능은 그 진정한 지능에 도달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도킨스는 존재를 과학적으로 해체해줬고, 부처님은 고정된 자아가 없는 무아를 설법하셨고, 카뮈는 삶의 의미 없이도 사는, 반항하는 존재로서의 삶의 태도를 말했다. 모든 메세지들이 실체는 없다는 하나로 관통하는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붙잡는 질문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