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맥락을 얻는 것 <<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김지원 >>

소라언냐 2025. 3. 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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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 좋은 글에 굶주린 당신에게

by 김지원

 

 

 

이 책은 이렇게 만나게 됐죠

이웃 블로거의 서평들을 읽다가 만난 책 제목. 종이 책을 넘기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직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에 끌렸다. 작가의 생각이 정제되어 담긴 책을 읽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책 한 권으로 쓸 수 있을 만치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나의 독서 여정에 뽐뿌도 더 받고 싶었고, 게다 소제목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과 ‘좋은 글에 굶주린 당신에게’에도 매우 공감이 되어 독서모임에 추천해 함께 읽게 된 책. 

 

 


 

목차 곧 내용

아무리 유튜브 동영상이, eBook이 대세라 해도 나같이 종이책을 선호하는 올드 패션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서가를 목적없이 서성이며 제목을 훑어보기를 좋아하고(작가는 이를 '책등 독서'라 했다), 읽으면서 나의 생각을 메모해두고, 좋았던 문장에는 밑줄을 치고, 펜이 없으면 귀퉁이를 접어가며 책을 읽는 사람들.

 

기자 출신으로, 온라인으로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발간한다는 작가는 오늘 날에도 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책을 썼다. 책 소제목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들을 달았다.

 

들어가는 말 - 즐거운 읽기 경험이 사라진 시대

   1. 잃어버린 즐거운 읽기 경험을 찾아서
       -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글’을 찾는다
       -  읽는 맛 ∙ 읽을 가치 있는 ∙ 읽을 수 있는
       -  문해력이 아니다

   2. 책은 [    ]이다
       -  책은 알고리즘의 대항이다
       -  책은 원산지가 표시된 정보이다
       -  책은 가치있는 텍스트를 모은 방주다
       -  책은 다양한 읽기 경험을 돕는 도구다
       -  책은 믿을 만한 지식의 지도다
       -  책은 서문이 붙어 있는 글이다

   3. 도구로서의 책 읽기 
      -  3무 독서법: 부담 없이 ∙ 중심 없이 ∙ 대책 없이 읽기
      -  ‘좋은’ 책 불러오는 법: 일상의 질문에 답이 되는 책 찾기
      -  인터뷰 독서법: 대화하듯 읽기
      -  읽기와 쓰기를 연결하는 메모법: 독서 일기에서 서평까지
      -  책이라는 기회: 책은 생각을 낚는 그물

나가는 말 - 읽기가 열어주는 즐거운 소통, 환대의 세계

 

 

'서가 옆 책의 법칙'이 가능한 이유

작가는 여러 번 반복해서 종이 책 한 권이라는 결과물이 만들어지는데 담긴 여러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에 대해 강조한다. 인터넷 상에서 빨리, 짧게 그리고 기계적으로도 생산되는 컨텐츠들과 비교되는 책의 가치. 물론 온라인 상에서도 반짝이는 보석같은 글들을 만날 수 있으나 따로 저장해두지 않으면 다시 그 글을 만날 수 없을 수도 있다. 글쓴이의 변심이랄지, 사이트 상의 문제, 등등의 이유로.

 

당대까지의 지식을 미래의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한 문헌정보학의 도움으로 수많은 책들이 구조적,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서가에 꽂힌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가지런히 분류되어 꽂혀 있는 방대한 양의 책들을 보면 경외감마저 들지 않던가! 

 

이를 통해 어떠한 한 주제에 맞는 책을 검색해 서가에 가면 그 책 근방에 꽂혀있는 관련 분야의 책들을 다같이 만날 수 있다는, 곱씹수록 너무나 큰 장점. 작가는 이와 같은 책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배움의 기회와 기분 좋은 조우를 독일의 예술사가 아비 바르부르크의 말을 빌어 ‘서가 옆 책의 법칙’이라 썼다. 

 

한편 책은 저자를 포함한 수많은 ‘보조자’들이 ‘정보’를 ‘지식’으로 구조화한 결과물이다. 책이 의미를 갖는 것은 책 생태계를 가꾸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우선 편집자가 국내 저자와 해외 도서를 찾아 선별하고, 선별한 해외 도서는 믿을 만한 역자를 섭외하여 번역을 의뢰한다. 저자와 역자는 원고를 쓰고, 편집자는 그 글을 편집해 책으로 만든다. 책이 나오면 언론사와 서평가는 서평을 쓰고, 출판사는 특정 키워드로 책이 검색되도록 만든다. 사서는 수서해서 적절한 분류 기호로 구분해 책을 적절한 서가에 꽂는다. 이처럼 수많은 보조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노동을 한 덕에 우리는 가치있는 정보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얻으려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책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흔한 은유로 쓰이는 ‘정보의 홍수’는 쓸만한 정보들이 돌멩이처럼 널려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정보의 홍수란 ‘정보가 너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유의미한 정보를 만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혔다. 

 

홍수처럼 쏟아진다는 온라인 상의 정보라도 필요할 때 닿을 수 없다면, 결코 연결을 통해 만들어지는 지식이 될 수 없다. 한 권의 책은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더라도 본문에서 전달하려는 개념을 맥락을 통해, 반복해 설명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 비해 오히려 인터넷 정보의 조각들을 이해하려면 높은 수준의 교양이 필요하다고. 온라인 상에서 검색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들도 내가 원하는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독서가 필수적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십분 공감한다.

 

 

질문이 먼저

‘좋은’ 책을 만나는 방법에 대해 작가는 의외로 쓸모에 포커스를 두지 않는 ‘해찰하는’ 독서를 말했다. 일상을 살면서 만나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날카롭게 자각하고 안테나를 세우고 있으면 ‘스웨터를 입고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붙어 있는 도깨비풀처럼’ 관련된 책들이, 심지어 유튜브 클립들을 보면서도 관련된 내용들이 자석처럼 달라붙게 돼있다고.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언급했던 ‘질문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질문이 먼저다.

 

 

서문과 원산지가 표기되어 있다

책은 서문이 있고, 원산지가 표기돼 있다는 챕터는 책에 대해 알고 있다 생각했던 부분을 더욱 선명하게 조명해줬다. 작가가 오랜 시간을 고민해 이 책을 ‘굳이’ 출판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쓰게 된 이유와 각오를 밝히는 서문. 작가는 비록 그 책이 어떤 결론을 내놓지는 못하고 여전히 작가의 고민과 생각을 따라가는 책일지언정 어떤 서문에는 ‘멱살이 잡혀’ 그 책을 끝까지 읽게 된다고 했다. ‘결론 없이 사려깊게 씌여진 책’이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챗GPT 등의 언어 기반 AI를 학습시킬 때 1차 정보, 즉 원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논문 등 필자의 저작이 1차 정보라면, 이를 인용해 쓰는 블로그 등의 글들은 2차, 또 그 블로그 글들을 인용해 생산되는 글들은 3차 정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AI에 2차 이후의 글들만을 입력하면 정확도가 매우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원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원정보 습득의 중요성은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또한 책을 읽는 동안 그 책에서 인용하거나 참고문헌에 각주를 달아놓은 다른 책들을 추천받아 읽게 되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책이 추천하는 다른 책들.

 

 

읽기와 쓰기는 하나의 동사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읽기’에 대한 책을 쓰는데 자꾸만 ‘쓰기’에 대한 글이 써져 몇번을 고인 물을 버리고 다시 쓰는 것을 반복했다 말했다. 그만치 읽기와 쓰기는 밀접하고 뗄 수 없는 것이기에. 

읽기(독서)가 부재한 쓰기, 쓰기가 부재한 읽기는 모두 조금은 허전하다. 전자는 자신의 세계를 뚫고 나가기 어렵고 그저 진부한 자기만족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후자는 읽기의 절박성이 덜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또 하나 책의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도출된다. 책은 자신이라는 비좁은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책은 단단하게 굳어져버린 나의 껍질을 깨고 그 사이로 맵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책을 다양하게, 함부로 읽을수록 나를 둘러싼 껍질은 더 자주 깨진다.
단, 책이 나의 껍질을 깨는 계기가 되려면 어느 정도 절박한 읽기 태도가 필요하다. 다소 절박하고 다급하게 굴지 않으면 책은 그저 내 껍질 위를 편하게 미끄러져 스쳐 지나갈 뿐이다. 칼럼이든 어떤 장르의 글이든 그렇게 깨어진 부분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급함은 억지로 만들어 낸 다급함이 아니라, 책장 위에서도 진짜로 ‘나의’ ‘우리의’ 문제를 생각하는 질문들에서 나온다.

 

반대로 아무리 번쩍한 기술이 우리 앞에 놓여 있어도, 그런 많은 ‘수고’없이 매끈하게 모든 것이 자동으로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을 나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다. 이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 우리가 종이책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종류의 종이 책들이 품고 있는 그 번거로움, 수고들 때문에 말이다.   

 


 

196 페이지 분량의 작은 책 한 권을 읽고 책은 단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맥락을 얻기 위해 읽는 것이라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나만의 질문이 생겼다면 무작정 검색을 하기 보다는 서가로 가야겠다. 작가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거쳐 '굳이' 출판된 책을 읽음으로써 큰 줄기의 맥락을 얻었다면 줄기로 쉽게 뻗어나갈 수 있고, 그 단계에서 검색된 온라인 정보들은 한 맥락의 지식 꾸러미로 꿰어질 것이니 말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길을 잃지 않고 나만의 지식의 계단을 쌓아 올라가는 지적 탐험. 책을 읽는 낙을 응원해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