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밥상
작가 헬린 니어링을 소개합니다
출판사의 작가 소개글을 인용해 작가를 소개한다.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뉴저지 릿지 우드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부모 슬하에서, 그녀 역시 자연의 혜택을 흠뻑 받으며 자연스럽게 채식인으로 성장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녀는 젊었을 적부터 유럽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였고, 한때는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연정을 교류하기도 하였다.
1928년, 헬렌은 장차 남편이 될 스캇 니어링을 만나게 된다. 스캇은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존경받는 교수 출신이었으나,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반전 운동을 벌인 명목으로 당시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1932년, 마음을 합한 그들은 도시를 떠나 버몬트의 한 낡은 농가로 이주한다. 바로 그곳에서 자연과 하나되는 그들의 ‘조화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필요한 먹을거리는 스스로 경작하고, 최소한의 것만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였으며, 반세기가 넘도록 의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삶을 누렸다. 삶의 매 순간을 명료한 의식과 치열한 각성 속에서 살아갔던 그 두 사람은 이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끼쳤다.
스캇 니어링은 100세 되던 해에, 음식을 서서히 끊음으로써 자신을 붙들고 있던 목숨과 작별을 고했다.
“나의 남편의 죽음은 단지 성장의 마지막 단계이자,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순환을 의미했다. 그는 끝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날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를 바랐다.”라고 헬렌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말했다. 헬렌 또한 남편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고자 하였으나, 불행히도 그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199년 9월 17일, 차 사고로 인해 그녀는 갑작스럽게 92세의 일기를 마쳤다.
이 책은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헬렌 니어링이 자상하게 일러 주는 ‘요리’ 없는 요리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혀가 아닌 우리의 몸,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 또한 배불리 먹이는 ‘진짜 음식'을 만나게 된다. 먹을거리와 먹는 행위에 대한 헬렌 니어링의 독자적인 관점과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근원적 미각을 일깨워 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만나게 됐죠
아는 언니의 추천으로 <<Loving and leaving good life (조화로운 삶)>>을 읽고 <<소박한 밥상>>을 종이책으로 빌려서 읽게 되었다. 당시만해도 육식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어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채식이 뭔가 더 한 수 위이고, 더 깨어있고, 깨끗하고, 미학적인 사람들의 고매한 식습관인 양 묘사된 것도 거슬렸고 말이다.
고지저탄 + GI 지수를 고려한 식사 + 간헐적 단식 등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방법을 나름 잘 알고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 스스로 당뇨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니 되도록 탄수화물을 피하고 육식을 해야 혈당 드리블이나 공복감 없이 든든하게 간헐적 단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프레임’이 있었기에 더 저항이 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 삐걱거렸다.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는 듯 보였지만 무언가 자꾸만 거슬렸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요리 없는 요리책. 맞다. 책의 앞부분은 에세이 형식으로 먹을거리와 요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이미 동작가의 <<조화로운 삶>>을 읽고 공감한 바가 커서인지 읽어갈수록 ‘육식'에 대한 집착이 점점 옅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어떻게 먹어도 이거다!하고 신뢰가 가는 식생활 방법이 없었다. 한동안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수많은 책들을 기웃거리며 지쳤었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식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었고, 거기에 사실 나의 평소 생각과 반하는 육식이 더해졌으니... 삐걱거렸던 것은 당연했다.
한마디로 추구했던 바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았던 까닭에 그간 수많은 건강 서적들을 기웃거렸던 것 아닐까. 책들을 덮으면서도 다 각각 다른 소리를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나의 원하는 바가 이미 모순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인사이트. 길을 찾은 듯 기쁘고 반갑다.
책을 다시 한 번 훑어보며 나이가 차면서 중년을 지난다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릴 때는 이면을 보는 통찰력이 부족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입에 맛있는 것만을 찾았다면 이제는 소식과 금식을 통해 몸과 마음 그리고 자연과 일치하는 그런 음식에 점점 더 끌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 나에게 좋은 음식이란 몸을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하게 걸림이 없는 음식이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선택입니다. 쉼 없는 선택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소모적인 삶이 아니라 도움되는 삶,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채식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좀더 멀리 나가야 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조화롭게 공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우주라는 전체의 일부이자 그것에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며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내어 준 과제를 실행한 것입니다.”
-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채식인 회의'에서 90세를 맞은 헬렌 니어링이 한 연설 중
정말, 나는 어떻게 먹을 것인가
비건, 베지테리언, 프루테리언, 페스카테리언, 락토 베지테리언, 오보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찾아보니 무엇을 어디까지 먹는가에 대한 분류가 엄청 많고 세세하다. '나는 이렇게 먹는 사람이다' 또는 '내가 식생활을 통해 지키고 싶은 것들은 어디까지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증일까.
먹는 것에서 신념을 지킨다는 것. 분명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느낀다.
내가 먹지 않겠다는 식재료 때문에 모임의 분위기가 급작스레 쎄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그 음식을 손수 만들어 정성껏 대접하는 이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식재료를 먹지 않아 이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거절할 수 있는가. 나는 못하겠다.
매일의 선택의 연속인 식생활에서 본인의 신념을 지키는 이들을 지지한다. 분명 자신에게 조화로운 식생활을 깊히 생각해본 이들일 것이기에.
현재 식생활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은 내 앞에 주어진 음식에 감사한 마음으로 먹되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육식을 피하는 것. 이것이 내 수준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다시 처음 자리로 되돌아 온 느낌이지만, 오랜 시간 이러한 진지한 고민을 해봤던 내가 있었다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 )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내용들을 남긴다
- 배고플 때 먹어라
- 소박한 음식으로 소박하게
- 크리스마스, 부활절, 추수감사절, 새해 등의 어처구니 없는 잔치상에 항의하는 의미로 금식한다.
- 생식은 태양광선으로 익힌 살아있는 음식인 반면 조리는 파괴, 죽은, 화장한 음식이다.
- 양념은 거짓허기를 유발한다.
- 썩거나 부패하는 음식만을 먹어라. 그러나 썩기 전에 먹어라.
< 육식 비판의 이유 >
- 불필요하다: 고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 필요성을 느끼게 된 식품이다.
- 비합리적이다: 고기 먹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왜 자기가 키우는 동물을 잡아먹지 않을까?
- 해부학적으로 불건전하다: 인간의 치아, 손, 발, 소화기관, 유선은 상당부분 영장류와 닮아 있다.
- 건강하지 않다: 신선 야채와 견과, 씨앗을 충분히 먹는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고도 영양학자들이 추천하는 최소섭취량 이상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 비위생적이다: 부패할 고기를 저장하거나 연화할 목적의 식품첨가물과 화학 약품이 함유되어 있다. 죽은 동물의 시체는 독성 폐기물과 유독성 박테리아 덩어리이며, 때로 종양, 암, 결핵, 돼지 콜레라 같은 건강에 위험한 질병에 걸려있기도 하다. (조류 독감, 광우병, 돼지 살처분 뉴스 등은 다 육식과 연관)
- 비경제적이다: 단위면적 당 단백질 생산량 비교. 비옥한 땅에서 나는 작물을 인간이 직접 먹는 편이 생태학적으로, 경제적으로도 합당하다. 채식인들이 먹이 사슬의 하위부분을 먹기 때문에 세계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미학적이지 않다
- 무자비하다
- 비윤리적이다: 동물을 직접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는 사람은 누구나 도살자에게 그 일을 의뢰하고 있는 셈이다.
< 요리의 의의 >
- 유익을 극대화하고 그것이 지닌 영양학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음식물을 준비한다.
- 이것을 낭비 없이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조리한다.
- 가장 입맛에 맞으면서 건강에도 좋도록 조리한다. - 토머스 쿠퍼 (1824)
- 요리하는 소란을 줄이고 최소한으로 먹는다.
- 집에서 기른 것을 거두어 먹는 생활양식을 조성한다. - 헬렌 니어링 덧붙임
“강경론자 친구들은 유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비난하고,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여행 중 달걀이나 우유가 든 음식이 나오면 우리는 그대로 먹을 것이다. 만약 고기가 있으면 먹지 않을 것이다. 일관성이 없다고? 그렇다. 하지만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 매사에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사람이 있을까?”
>> 깨달았다면 한 방향으로 정진해가는 과정이다.
언젠가 동물 살해를 인간 살해와 똑같이 보는 때가 올 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여기, 이곳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먹고 산다네.
진수성찬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나는 만족스러워.
콩이든 맥아즙이든 사탕무든 뭐든 달게 느껴지지.
다른 이의 노고를 먹지 않고 우리가 공들인 것을 먹고 사니까.
- 로버트 헤릭 (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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