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이 책은 이렇게 만났죠
지인의 책장에서 발견했던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 한국어로 씌인 종이 책을 실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사치였던 시드니에서 만났기에 더욱 더 반가웠을까. 그 중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을 빌려서 읽었었다. 이때 읽고 짧게 남긴 서평을 발견해 다시 연결해 쓴다.
문체는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의 그것과 매우 흡사해 남성작가인가 싶을 정도로 짧고 간결한 문체이지만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틀 밤만에 다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 박경리에 대해서도 찾아볼 기회도 있었다. 불우한 환경과 개인사의 아픔을 글을 쓰는 일로 극복해낸 작가. 독자로서도, 같은 여자로서도 존경심이 생기는 작가였다.
조선의 나폴리, 통영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고 한다. 그러니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작가 박경리의 고향은 통영이다. 외가는 거제도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다른 부분과는 다르게 통영의 아름다운 경관은 자세히 묘사한다. 한 5-6년 전 통영을 여행했었는데, 기대가 컸어서였던지 책에서 묘사하는 것만큼 푸르고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전체적으로 섬이 좁고 좀 답답했었다는 기억이 남는다. 참! 남해의 끝없이 흩어진 조그만 섬들이 낙조에 어우러져던 순간은 정말 장관이었지!
급변했던 혼돈의 시기
‘김약국의 딸들’은 1900년부터 1930년 전후의 통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일제치하 전후의 조선 통영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어있다. 계급구조로는 양반 상놈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종교는 무속부터 불교, 개신교까지 등장하고 있으며, 약방부터 서양식의 진주병원까지 급변하는 시대에 통영의 토호인 김약국(봉제영감이 하던 약방을 조카 아들 성수가 물려받아 약국을 하지 않아도 ‘김약국'으로 불리운다) 가족의 몰락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삶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극적이다. 김약국의 다섯 딸들-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이 겪는 비극은 마지막 부분 둘째 딸 용빈이 강극에게 털어놓는 말에 잘 요약되어 있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났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배가 침몰되어 물에 빠져 죽은 거예요."
여기에 용빈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넷째 딸 용옥의 죽음마져도 비극적인 상황이 숨어 있다. 셋째 언니 용란을 맘에 두고 있는 기두와 결혼한 용옥은 남편에게 냉대를 받고 외롭게 살았고, 시아버지의 겁탈을 피해 남편이 가 있는 부산으로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배 사고로 어린 딸과 함께 죽었던 것은 작가와 독자, 시아버지 서영감만이 알고 있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삶
물려받은 약국과 재산으로 나름 지방의 토호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해 가산을 탕진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 김약국 일가의 이야기. 벌써 100년 정도의 전의 시대가 배경이었던 소설이었지만 모든 가치가 흔들리고 새로이 출현하는 시대라는 점은 어쩐지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기증 날 정도로 모든게 급변한다 느끼는 혼란기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저렇게 사연많은 죽음들이 얽혀있어 집안이 망하고 사람이 상하리라던 무당의 점괘처럼 폐허가 돼버린 집안. 작가는 그 많은 사연들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다섯 딸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서 공부하고 서울에서 일을 하던 둘째 딸 용빈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비극적인 가족사를 덤덤히 정리하듯 이야기하는 장면. 어쩌면 작가는 용빈을 통해 다 쓰러져버린 김약국 집안에서도 과거를 딛고 꿋꿋이 살아나가려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주는 듯 보였다.
또 다시 만난 질문
책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원혼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온다. 김약국의 한실댁이 점을 치러 갔을때 받았던 “내사 점괘 나는 대로 말을 하요. 맞아 죽은 구신, 굶어 죽은 구신, 비상 먹은 구신, 물에 빠져 죽은 구신, 무당 구신, 모두 떳들었으니 집은 망하고 사람은 상하고 말리라.”는 점괘나 ‘비상 묵은 자식은 지리지(번성하지) 않는다던데...’라는 표현은 소설 전반에 걸쳐 반복되어 나온다.
나는 소설의 내용과는 별개로 왜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자살을 그렇게 터부시할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왜 극약을 먹고 자살한 사람은 자손들까지도 풀리지 않는다고 믿었을까? 왜일까? 유시민의 ‘어떻게 살것인가'에서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라는 챕터가 있다. 그 책을 다 읽었을때 들었던 의문을 이곳에서 또 만날 줄이야.
나는 그 질문을 저리 치워두고만 있었구나. 역시 궁금하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데 왜 죽을 날은 기다려야만 할까? 내 목숨은 내 것인데 능동적으로 죽을 수는 없을까? 모든 것이 자유 의지에 달렸는데 왜 죽음만큼은 그 영역에서 조용히 빠져있는 걸까?
역시나 우리에게는 종족보존이라는 본능이 있는데, 거기 반해 자살한 사람은 그 자체에 결함이 있는 존재라 그런걸까?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력의 상실은 재산의 상실로 이어지므로 노동력의 상실이 아까워 자살을 터부시하는 문화를 만들어 낸것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우리는 ‘나와 그들’의 죽음은 그리 슬프지도 않고 큰 의미도 없지만 ‘너’의 죽음은 나에게 엄청난 슬픔을 남기기에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로 만들어둔걸까?
“삶에 고통이 없었다면, 문학을 껴안지 못했을 것이다.”
6.25때 남편이 납북되어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글을 썼던 여성 작가. 그녀는 삶이 문학보다 먼저라 했다. 그녀 현실의 삶의 무게가 쉬이 상상이 되는 나이가 되어서일까... 예전에 읽었을 때와 많이 다르게 읽힌다.
소설에서 강극은 위의 용빈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퍽 오래된 얘기군요. … 저의 아버지는 혁명가도 아니었고 우국지사도 아니었어요. 다만 부자였지요. 그 아버지가 왜놈들에게 타살된 거예요. 머슴이 시체를 말에 태워가지고 왔더군요. 지금은 아슴푸레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게 누이가 있었습니다. 그 누이가 지금 왜놈하고 살고 있단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용빈씨 혼자만이 비극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니죠."
어쩌면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토록 몸서리치게 비극적이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지라도 기어이 살아내려는 인간의 의지. 그리고 나만이 지금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삶만이 유독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와 같은 고통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사실.
작가가 살아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반추해보자니 이는 남의 불행에 나의 행복을 쌓는 미련함이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가여운 이들과 나를 향한, 연대와 위로로 읽힌다.
문학이라는 것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학의 골자입니다.
박경리
작가 박경리님의 소개합니다
작가의 이력을 출판사의 작가 소개 글을 간추려 남겨둔다.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을 비롯하여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5)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특히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박경리 개인에게나 한국문학에 있어서나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6백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동학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박경리의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의 흐름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생명사상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토지'이다. 박경리에 의하면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파시』 제1권, 131면, 1993)인데 그의 작품에서 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본능 이상으로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 및 권력과 집단에 대한 비판, 욕망의 노예가 되어 존엄성을 상실한 인간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존엄성을 상실할 때에 바로 한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 한을 풀어가는 과정이 곧 박경리 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김은철 상지대 국문과 교수)
그는 문학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원주 오봉산 기슭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3)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2004)도 출간하는 등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놓치 않았다. 2008년 5월5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한국현대문학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았다. 타계 이후 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현대문학]에 연재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수필집 『Q씨에게』, 『원주통신』, 『만리장성의 나라』,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생명의 아픔』 등과 시집으로는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이 있다. 그밖의 주요작품에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단층(單層)』, 『노을진 들녘』, 『신교수의 부인』 등이 있고, 시집에 『애가』가 있다.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며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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