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제주 4.3을 수면 위에 올리다 <<순이삼촌 - 현기영 >>

소라언냐 2024. 4. 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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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by 현기영

 

독서모임에 이 책을 소개했죠

내가 왜 <<순이 삼촌>>이 그렇게 두껍진 않은 책이라고, 남성 작가의 문장답게 속도감이 있어 잘 읽힐거라고 소개를 했나 싶을 정도로 재독하는 내내 책 속의 화자 ‘나'들처럼 무기력하고, 맥아리 없고, 두렵고, 불안하고, 화나고, 우울하고, 억울하나 다시 무력하고… 여튼 나도 장판에 등딱지가 들러붙어 있는 듯한 지리한 느낌이 내내 들었다. 잘 읽힐거라 소개한 것은 사과드립니다. ㅎㅎ

 

책은 현기영 작가의 중단편들을 모아놓아 볼륨이 꽤 되었다. 단편 소설 모음집이라고 결코 작은 책이 아닌 것이 국지적으로 제주의 ‘4.3사건’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이는 곧 우리의 근현대사의 큰 상처인 ‘여순사건’과 <<태백산맥>>의 그것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감히 <<순이 삼촌>>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개요를 이해한다면 왜 ‘여순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는지, 왜 아직도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는지, 왜 피해자들은 침묵을 고수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순이 삼촌>>이 속도감 있고 술술 읽혔다고 기억하는 건 아마도 첫 번째 단편 <소드방 놀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슬아슬하게 이방의 죽고 사는 광경을 눈으로 보듯 속도감 있게 묘사한 덕분에 그의 입을 통해 탈춤 구경하듯 윗분들을 멕이는 풍자가 재밌게 읽혔던가보다. 그 이후의 주욱~ 늘어지는 소설들에 비해서 말이다. 기근에 굶어죽는 백성들이 많은데도 사또는 이방을 시켜 긍휼미를 꿍쳐 돈으로 바꿔오게 시킨다. 이러한 부조리를 따른 이방 자신도, 굶고 있는 백성들도 모두 잘 알지만 결국 희생양은 익히 그러하듯 명을 따랐던 힘없는 이방이고, 쳐죽일 놈은 사또란 것을 다들 잘 알면서도 이방에게 돌팔매질 해 죽인 것이다. 그렇게 이방이 죽은 후 이는 없던 일이 된다.

 

 

<해룡이야기>는 어찌할 수 없는, 우리 식구만 특별나게 당한 억울한 일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이 산불에 타죽고 홍수에 떠밀려가듯 누구라도 그렇게 흔히 죽을 수 밖에는 없었던, 4.3은 그냥 천재지변이었다고 접으려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제주 4.3의 참혹함을 알려야 한다고, 억울함을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젊은 세대의 의견에 누가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일을 따지고 보상받으려 하냐고... 그래, 말 꺼내봤자 속만 터지고, 해코지나 당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천재지변처럼 허망한 것이라고.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에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 해룡이야기 >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허망한 일이었다.
< 해룡이야기 >



<아내와 개오동>의 전직 기자 ‘석규'나 <꽃샘 바람>의 ‘공장 문은 닫히고, 놈팽이는 군대 가버리고, 돈은 떨어져, 고향엔 무조건 가기 싫은, 길을 잃기 쉬운… '인숙'의 입을 통해 작가가 묘사한,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막막함과 분노 그리고 무기력함이 내게는 제주민들의 무력한 한스러움을 그려낸듯 읽힌다.

 

그들이 당했던 명백한 피해와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해 답답하고 무력한 심정을 서슬퍼런 군부 정권하에서 르포처럼 쓰기는 두려웠으리라. 읽는 내내 답답하고 알수 없이 불안하고 두려운 심리 상태는 제주민들의 현재의 집단무의식 그것 아닐까. 공통의 장소에서 집단으로 겪었다는 점에서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와 다를 바 없으나 그들과는 달리 사과를 받기는 커녕 한번도 입밖으로 낸 적 없고 치유 받아본 적도 없는 집단 트라우마. 

 

 

<초혼굿>의 <못 닿는 고향>의 박진호 병장과 <살>의 익수의 자살은 읽으면서도 일면 의아한, 알 수 없는 공포가 무엇을 말하려했는지 보인다. <순이 삼촌>의 주인공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 일 겪은 적 없는 척 일류대학을 가고, 서울 말을 패치하고, 처의 본적으로 고향을 세탁하고,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고무되어 있슴을 전시에 해병대를 자진입대해 증명해보이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당했던 명백한 피해를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답답함, 분노, 무력함. 개인이 겪은 트라우마는 DNA를 통해 유전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그들이 느낄 막막함에 다시 분노하게 된다. 

 

 

현기영을 작가의 반열에 올려준 <아버지>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본 산폭도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아이들과의 무리에서 어느 순간 떨어지게 되었고, 지저분하지만 나 혼자만의 산속 비밀의 연못을 가지고 있던 나. 친구들과의 다툼 중 부잣집 아이 완실의 이마를 돌로 깬 ‘나’를 완실은 미행해 따라와 연못 속에서 놀고 있던 '나'를 협박한다. 어린 아이 ‘나’가 연못에 갇힌 곤란한 상황은 제주라는 섬에 갇힌 채 섬주민들이 겪은 ‘4.3사건'을 묘사한 듯 보인다.

“넌 독안에 든 쥐야!”  
원 안에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버렸다. (원의 주인은 나였는데….) 믈 가운데를 벗어날 수 없는 나는 옛날 죄수처럼 원형의 큰 칼을 써버린 셈이다. 몸은 굳게 닫혀 썩은 물과 싸우고 있다.
< 아버지 >



<<순이 삼춘>>으로 묶여져 있는 작가의 중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작가는 문학의 힘을 빌려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려고 했다는 점이 분명히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군사독재의 공포정치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자기검열에 찌들면서, 어떻게든 ‘아니다'라고 말해보려고 부심’해가며 글을 쓰던 자신을 젊은 날의 모습들을 본다고 말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 모진 경험을 한 피해자들도 감히 두려워 입밖에 내지 못하는 그 사건. 온동네가 같은 날 겹제사를 지내는 날이나 가족끼리 목소리를 낮춰고서야 나눌 수 있었던, 아직도 반복되는 생생한 두려움 그리고 분노, 무력함. 

 

제주 협재 바다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을 받았었다면, 이번에는 엄청난 감정이입에 좀처럼 읽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푸르고 아름다운 4월의 제주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었다니. 그리고 이렇게 감쪽같이 없던 일이 됐다니. 산으로 산으로 숨어들었을 그들을 생각하니 한라산 1100고지 신록의 나무들 사이의 비탈길들이 다시 보였다.

 

 

귀국해서 정착지를 알아볼 겸 작년 이맘쯤 모처럼 마음을 먹고 제주 한 달 살이를 했었다. 제주 4.3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기 전후로 나의 제주에 대한 마음은 크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이전의 제주는 마냥 따듯하고 아름다운 휴양지였다면 지금의 제주는 가서 안아 주고 싶은 쓸쓸하고 슬픈 섬이 돼버렸다. 저 똑같이 푸른 바다를 보며 얼마나 많은 억울한 눈물들을 흘렸을까. 

 

 

 

한 달 동안 지내면서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왠지 제주는 아직 자신들이 국가로부터 겪었던 참혹한 집단 유린을 입밖에 내길 쉬쉬한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누가 외지인에게 그런 얘기를 먼저 꺼내겠느냐만은.

 

광주의 경우에는 전일빌딩의 총탄 자국들에 밤에는 스팟 조명을 켜두는 등 관광객이라도 여기가 그 장소임을 당당하고 분명히 소개하는데 비해 제주의 4.3은 아직도 그저 묻어두려고만 하는 큰 세력들이 보인다. 4.3 기념일을 앞두고 횡단보도에 걸렸었던. 김일성 지령, 빨갱이 운운하던 현수막들. 몇권의 책들을 통해 4.3의 제주도민들에게 이입되어 있던 내게 그런 현수막들은 아직도 그들을 겁박하는 듯 보였다. 우리 아직 건재해. 알지?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섯불리 들고나왔다가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 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삼십년 동안 가가자의 어두운 가슴 속에서만 갇힌 채 한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봐 두려웠다.
< 순이 삼촌 >

 

 

침묵한다면 그들의 천재지변은 내게도 생길 일

제주에서 나고 자란 원희룡이 전국수석을 하고, 정치에 입문하자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부풀었었다. 우리의 한을 풀어줄 사람이로구나. 무소속이었던 그를 제주도지사로, 국회로 밀어주었지만 그는 지금 어느 당에서 무얼 하고 있나. 그토록 무거운 침묵만을 강요 받았던 사건을 노무현 대통령 때 4.3기념관을 세워 겨우 입밖에 내기 시작했으나 2008년 이명박이 정권을 넘겨받던 그 해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다.

 

2024년 4월 3일 오늘도 윤대통령과 한동훈 대표는 4.3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얼마나 더 침묵해야 제주 4.3은 ‘있었던 일’이 될 까. 작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출간했던 책. 항상 그렇듯 같은 시민으로서의 연대가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침묵하고 모른 척한다면 그들이 겪었던, 해룡이야기와도 같은 ‘천재지변'은 나도 겪을 일이다. 큰 용기를 내 위험을 무릅쓰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겨준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제주 4.3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던 그림

 

작가 현기영님을 소개합니다

삼엄한 시기에 기어이 목소리를 내어준 작가. 현재의 우리가 제주 4.3의 참혹함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분과 같은 작가들 덕분이다. 작가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빚진 마음이 크다.

 

1941년 일제치하 말기 제주에서 출생. 1948년 일곱살이 되던 해 ‘4.3사건’을 가장 극심히 겪었다는 고향 노형리 마을이 전소되는 참혹한 광경을 어린이의 눈으로 목격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이 어려워지자 제주 밤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으나 서울대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입학했다가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영문교육학과로 전과하여 졸업 후 약 20여년간 교편 생활을 하던 중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아버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79년 첫 소설집 <<순이 삼촌>>을 출간했으나 군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과 한달 옥살이를 하는 고초를 겪는다. 이후 1990년 49세가 되는 해에 만해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의 입지가 단단해진다. 2001년 60세에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박정희기념관 반대' 1인 시위에 참여한다. 작가의 여러 책들이 일본, 타이완, 미국으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제주 4.3 기념일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