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각자도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해되는 <<절제의 기술 - 스벤 브링크만>>

소라언냐 2024. 4. 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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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기술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작가 스벤 브링크만을 소개합니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덴마크의 심리학자.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와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알보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은 물론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출간 후 106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의 대표작 <<스탠드펌>>으로 2015년 사회에 의미있는 통찰을 준 대중 지식인에게 수여하는 상인 로젠크예르상을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유쾌한 철학 강의를 진행해 많은 호응을 받았다. 방송 내용을 토대로 쓴 저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우리가 어떤 하나의 가치를 굳게 지키고 그 위에 바로 서 있으려면, 다른 것들은 내려놓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많은 것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건 실존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우리가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 에필로그 중

 

철학이 깊은 사유라면

과학 관련 책을 읽으면 우리가 이전엔 전혀 알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인문학책, 그 중에서도 철학책은 우리가 살아오며 어렴풋이나마 경험치로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을 작가의 언어로 정제된 글을 읽는 것이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그야말로 누구나 알고 있을 내용을 깊이 사유해 정리해둔 책이다. 위 에필로그의 작가의 말은 그야말로 당연한 말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이야기에 대해 작가는 심리적, 실존적, 윤리적, 미학적 관점을 통해 그의 깊은 사유를 전한다.

 

목차이자 책 내용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시작하며 - 기꺼이 뒤쳐지고 더 많이 내려놓을 용기

[ 원칙 1 ] 선택지 줄이기: 내 삶의 한계에 대해 깨달을 심리적 준비

[ 원칙 2 ]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실존적 이유

[ 원칙 3 ] 기뻐하고 감사하기: 경제학이 알지 못하는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

[ 원칙 4 ] 단순하게 살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정치적 결정

[ 원칙 5 ] 기쁜 마음으로 뒤쳐지기: 일상이 즐거워지는 삶의 미학적 형식

마치며 - 절제는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책들이 떠올랐다. <<명상록>> <<디컨슈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우아한 가난의 시대>> 등등.

 

미셸 vs 키드의 마시멜로 실험의 메시지

개인의 의지만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허상임을 지적한다. 한 개인의 성공은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챕터의 지면을 할애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시멜로 실험을 다시 설명한다.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며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던 아이들이 이후 대학 입시 시험의 성적도 더 높았고, 심지어 비만하지도 않는 등 삶의 성취도가 더 높았다는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 결과. 

 

30년이 지난 이후 셀레스트 키드는 이 실험을 다른 방면으로 확대하여 실험한다. 바로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의 유무를 추가한 것. 참가한 아이들 중 절반은 자기가 말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연구자를 만났고, 나머지 절반은 믿을만한 연구자를 만났다. 믿을 만한 연구자 그룹의 아이들의 2/3가 나중에 더 큰 보상을 위해 15분을 기다렸고, 반대의 그룹은 단 1 명만 15분을 기다렸다.

 

과거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은 절제도 훈련을 통해 근육처럼 키울 수 있는, 개인의 자기 자제력이라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 이는 절제가 개인의 역량 문제로 귀결된다. 

 

키드의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가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절제는 추상적 개념의 자기 절제도 있겠지만,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개인의 자기 절제 능력은 오롯이 개인의 의지에 달린 인격적 특성이 아니라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는 한 개인의 성공은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변에 신뢰할만한 어른이 거의 없고, 혼란스럽고 불안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그 무엇도, 아무도 신뢰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눈앞의 당장 얻을 수 있는 만족을 절제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숲속의 새 두 마리보다 낫다’는 속담처럼 그 아이들의 얼핏보면 절제하지 못하는 행동과 선택이 나름의 합리적 판단에서 나온 결과일 수 있다.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의 함정

마시멜로 실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작가는 인간을 손익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경제적인 동물로만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 인간은 윤리적인 동기로 인해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므로.

 

마시멜로 실험에서는 나중에 더 큰 보상을 얻기 위해 눈앞의 욕망을 참는 것이 절제다. 이런 생각에는 기회주의적이며 도구주의적인 논리가 깔려있다. 어떤 행동이 이익이 되니까 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다른 행위들보다 옳은 행동이 있다는 사실을 소홀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마시멜로 실험이 강조한 식의 자기 절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자기 절제라든가 유혹에 저항하는 힘이 절제의 기술을 갈고 닦는데 매우 중요하지만, 그 목적이 단지 더 큰 보상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공허하고 이기적인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절제의 기술은 실존적이며 윤리적으로 중요한 상황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가치와 연결되지 않은 절제는 개인의 눈먼 자기 충족 수단으로 축소되기 쉽다. 순전히 기회주의적이거나 도구적인 자기계발 도구가 되기 쉽다는 말이다.

 

인간의 숙명적 한계, 죽음

행복에 대한 연구와 심리학적 조언이 넘쳐나는 지금의 ‘행복 산업’에서의 심리치료사나 라이프 코치,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자기의 생각과 느낌, 행동 방식만 바꾸면 번뇌가 사라지고 엄청난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저자는 이런 현상의 문제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키드의 실험 결과가 말해주듯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나 환경의 중요성은 간과한 채 단지 행복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라고 선언함으로써, 행불행의 책임을 개인에게 오롯이 떠넘긴다고. 여기에 더해 뼈때리는 현실을 짚어준다. 행복을 ‘선택'하기만 하면 곧바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미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고 좋은 사회 문화적 기반에서 자라나고 생활하는 소수라고 말이다.

 

따라서 행복 산업의 주장은 나의 불행의 원인이 내 자신에게 있다는 느낌을 더욱 부추겨, 결국 행복 산업의 서비스에 더욱 의존하게 하게 해 산업이 눈덩이처럼 덩치를 키우게 한다.

 

계속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 스토아 철학의 향기가 나는 ‘부정적 시각화’를 활용하라고. 인간으로써 우리의 한계, 죽음을 깨달으라고 말이다. 죽음이라는 명징한 한계를 자각한다면 계속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행복 산업과 쾌락 쳇바퀴는 설득력을 잃는다.

 

그리고 ‘내가 대체 뭐라고?' 라는 태도의 얀테 주의와 삶에 대한 낮은 기대 덕에 덴마크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실망과 실패를 더 잘 견디는 것 같다고도 말한다. 언제든지 부정적인 결과를 마주할 심리적 준비가 갖춰졌으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스토아 학파 철학자의 자세가 아닌가. 이러한 ‘방어적 비관주의’는 대체로 우리의 불안을 덜어준다.

 

시몬 베유의 관심의 철학

일전에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작가 에릭 와이너는 시몬 베유를 ‘관심의 철학자'라고 칭했다. 그 당시에는 베유가 주장한 ‘관심’이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주장했던 ‘관심의 철학’이 무엇인지 갈피가 잡힌다.

 

이 책에서 작가는 프랭크퍼트의 ‘마음 쓰는 일’을 인용하여 이는 무언가를 욕망하고 욕심부리는 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예로 들었던 입원 환자의 가장 마음 쓰이는 일이 정원의 장미 가지치기를 못하고 입원한 점이었던 것처럼. 프랭크퍼트가 말한 마음 쓰는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처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 대개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일, 따라서 뜻하지 않게 실망하거나 깊은 슬픔을 겪을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우리가 마음 쓰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기에 바라는 것이므로.

 

반면 이렇게 실망이나 슬픔을 겪을 위험을 무릅쓰면서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일,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해방적인 면이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동시에 관계적인 감정인 사랑에 마음을 열었을 때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관성과 자기중심주의의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으므로. 마음을 쓸 능력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른 무언가에 우리 자신을 내맡길 수 있다.

 

한계를 모르는 자기계발 문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원하는 태도에 윤리적 의무는 결여될 수 밖에 없다. 또한 한계를 모르는 자기계발 문화로 여가는 늘어나지 않고, 기술 발전에 따른 효율로 생긴 여가는 또 다른 자기계발로 채워진다. <<디컨슈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LED 전구 개발로 소비 전력이 획기적으로 줄어 소비 여력이 생기자 다른 조명을 더 사서 달더라는 예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만족의 미덕과 품위 있는 단순함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해내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 끝모를 성장의 바퀴를 돌릴 생각들이 일상이고, 바람직한 시민상인 현실에서 작가는 반대로 만족의 미덕을 강조한다. FOMO의 반대로 Joy Of Missing Out(JOMO)을 내세우며.

 

어떤 흐름에 내가 뒤처질지 모른다고,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어떤 흐름에서 뒤처지고 마음을 내려놓다 보면, 지금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나는 현실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기후변화나 세계적 불평등 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하려면, 우리가 이미 가진 것에 기꺼이 만족하는 태도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갖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견뎌내는 법, 무언가를 기꺼이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태도 없이 지속가능한 사회가 실현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작가는 품위있는 단순함을 설명하면서 미니멀라이프 스타일의 알맹이 없슴 비판했다. 이는 세계적인 불평등 현상도 함께 짚는 것이었는데, 정말 단순하게 살려면 개인이 상당한 정치적, 문화적 자산을 가진 상태여야 한다고.

 

유기농 농산물로 요리해먹는다는 것은 식재료의 재배 방법과 공정 경제,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상대적으로 비싼 유기농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도 있어야 하므로 이 모두가 개인적 자산이다. 엘리트 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정치적일 필요가 있으며, 사회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지 개인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된다고. 동의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다섯가지 방법

항상 최대의 만족을 얻으려는 생각이 삶을 망친다고 주장한 슈워츠. 작가는 그의 책이 절제와 연결되는 지점을 인용한다.

첫째, 선택의 자유를 어떤 방법으로든 자발적으로 구속한다면,
둘째, 가장 좋은 것만 찾는 대신 ‘그럭저럭 괜찮은 것'을 찾는다면,
셋째,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면,
넷째, 우리가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다섯째,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덜 기울인다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절제의 기술은 결국 지속가능한 삶 지향이었어요

작가가 말한 절제의 기술은 탈자본주의를 말하는 걸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가능성만은 주지만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자본주의. 

 

우리 삶에 우연과 관계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절감한다면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나 개인의 삶의 행복과 자유를 넘어 공동체의 안녕을 책임진다는 적극적인 자유. 각자도생을 사는 지금의 우리는 개인의 행불행이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기에 이런 생각은 오지랖이라 여겨지는 것인지.

 

직선적인 시간관을 내려놓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개 카레닌처럼 순환적인 시간관을 받아들인다면, 매일매일 도시락을 싸는 일상의 반복이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다. 한 번은 무의미하므로.

 

작가가 말한 JOMO. 기쁘게 내려놓는 삶이란 사실은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통찰. 여전히 내려놓는다는 어휘에는 무엇가를 포기하고 잃는다는 부정적 감정이 들지만 그럼에도 큰 그림을 그려본다면, 두 번 생각할 여지 없이 기꺼이 놓을 수 있는 용기는 당장 필요하다.

 

적당히 만족하는 법

덜 가져도 만족하는 법

자족하는 법을 익힐 것


- 절제의 기술

 

 

‘각자도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해돼요

어제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마쳤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민의 심판이라는 총선에서 진보 진영은 189석, 보수 진영은 개혁신당까지 합쳐 111석을 얻었다. 민주당 단독으로도 과반수를 넘길 정도로 진보 진영의 압도적 승리였건만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여권이 의회의 1/3, 즉 100석 이상을 가진 한 지금처럼 앞으로도 대통령의 거부권(재심의 요구권)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지금까지 그가 거침없이 거부권을 사용해온 이력을 보면 압승이 무색할만치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씁쓸함. 

 

총선을 거치면서 보수 여당의 민낯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참패니 어쩌니 하면서도 100석을 넘겼으니 됐다, 살았다는 내색을 감추지도 않는 패널들. 이번 선거 판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보수당이 선전했다 착각할지도...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리고 대통령의 30%대의 낮은 지지율에도 거침없던 행보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의회의 1/3인 100석만 유지하면 ‘합법적으로' 마지막 카드인 거부권을 계속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압승에도 불구하고 찜찜하기 그지 없는 마음으로 <<절제의 기술>>로 예정돼있던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절제에 관해서는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만치, 연대에 관해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만치 확 와닿는 내용은 아니었다는 점에 의견이 모였다. 시민의 연대라는 똑같은 결론을 주장하는 글이지만 복지가 탄탄한 나라에 살고 있는 작가가 신영복 선생 급의, 바닥에서부터 길어올린 정수가 씌인 글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던 아이들은 대부분 눈앞의 마시멜로를 절제하고 참을 수 있었다는 실험 결과를 들여다 보자니 어쩌면 정치부터 신뢰사회와는 거리가 먼 한국이기에 우리는 ‘각자도생’만이 머릿 속에 각인되어 개인들은 각각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게 된 것 아닐까. 불합리해보여도 내 손 안의 한 마리 새가 숲 속의 새 두 마리보다 소중한,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이니까.



2024.04.11.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5주년 기념일에 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