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인듀어런스 - 캐롤라인 알렉산더>>

소라언냐 2024. 6. 12. 16:08
반응형

The Endurance

The Endurance  by 캐롤라인 알렉산더, 김세중 옮김



 

이책은 이렇게 만나게 됐죠

곡성 도서관에 회원 가입을 하고 남편이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와 함께 대출해온 책. 제목이 익숙하다 했는데 예전 <알쓸신잡>에서 추천했던 책이었다. 남편도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뒀었는데, 여수 이순신도서관에는 없었다고. 곡성 도서관이 크진 않은데 소장된 책은 더 많아 기쁘다. 없는 책은 희망 도서로 신청하면 전공 서적 같은 특수 출판물을 제외하고 3만원 이하의 책은 구매해 우선 대출을 해준다니!  오 판타스틱! : )

 

Endurance 인내, 참을성

책의 내용은 시시각각 변하는 남극 얼음 바다에서의 난파와 고립 그리고 임시 캠프를 전전하며 구조 받기 위해 육지로 닿으려는 처절한 기록이 한 축이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원들을 먼저 배려하며 한 명도 잃지 않고 귀가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어니스트 새클턴의 빛나는 리더쉽이 또 한 축이다.

 

프랭크 헐리 Frank Hurley라는 호주 사진 작가가 대담하게 부빙 사이를 오가며 찍어 그 어려운 순간들에도 목숨처럼 지켜 가지고 온 원판 사진들이 이 책 전체에 줄거리를 따라가며 삽화처럼 있어 그림책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게 그들의 여정을 상상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책 내용을 볼까요 

15세기부터 시작됐던 대탐험 시대도 막을 내리던 1914년 8월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Ernest Shackleton은 한 번의 남극 탐험에 실패한 후 다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남극대륙 '횡단'에 나서지만 목적지를 불과 150km 남겨놓고 이들이 타고온 인듀어런스 호는 얼어붙은 바다에 갇혀버린다. 

 

얼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배는 곧 부서졌고, 남극해를 떠다니는 부빙에 몸을 옮겨 실은 이들은 이때부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과 싸우며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한다. 

 

남극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 위에 페이션스(Patience 인내력) 캠프를 차리고, 펭귄과 물개를 잡아 먹고, 펭귄 가죽을 연료 삼아 연명한다. 잠은 방수가 되지 않아 젖은 슬리핑 백에서 자는데 그마저도 자던 자리 아래의 얼음이 갈라져 크레바스로 떨어질 뻔한 대원도 있을만치 떠다니는 얼음 위의 생활은 위험한 상황이다.

 

임시 캠프를 설치하고 지내다가 약 300km 정도 떨어져 위치한 섬으로 부빙 위를 걸어 이동하려 하지만 악천후로 눈이 허리까지 쌓여 1km도 채 이동하지 못하고 정지해 그 곳에 오션 캠프를 설치하고 난파된 인듀어런스 호를 왕래하며 사용가능한 자재들과 음식 등을 나른다.

 

오션 캠프에서 얼음이 녹아 보트를 띄울 수 있는 날씨를 기다리며 지내지만 떠 있는 얼음 위에서 지내는 터라 부빙이 조류를 타 휩쓸리면 기대했던 진행 방향과 완전히 틀어져 수시로 위치를 계측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예상진로를 바꿔야 하는 악조건.

 

마침내 길이 6m의 작은 보트 세 대에 27명의 대원들이 나누어 타고 이동한다. 하지만 날씨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고, 약 7일 밤낮을 빙하 얼음이 작은 나무 보트를 난파시킬 위험, 악천후와 식수 부족을 버텨낸 대원들은 모두 무사히 엘리펀트 섬에 상륙한다. 대원들 반 이상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일 정도로 탈진한 상태였지만, 물에 젖은 침낭에서 자면서도 그들은 육지에서 잔다는 마음에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구조 요청을 위한 항해

육지이기는 했으나 황량하고 위험한 엘리펀트 섬. 섀클턴은 선장을 포함한 다른 대원 5명과 함께 갑판도 없는 6m 크기의 작은 보트 커드호를 타고 무려 1,000km나 떨어져 있는 사우스 조지아의 포경기지로 가기로 발표한다. 구조 요청을 위해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겨울에, 단지 4주치의 식량만을 가지고. 남겨진 대원들을 통솔할 프랭크 와일드에게 유언장과도 같은 편지를 남긴 채.

 

섀클턴의 이 무모해 보이는 여정이 성공하지 못하면 엘리펀트 섬에 남아 있는 이들의 생존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상황. 출항하자마자 48시간 동안 해일, 원인 모를 조류와 싸운 일행은 16일 만에 기적적으로 육지에 닿는다. 추후 이 항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로 기록된다. 그들을 괴롭혔던 허리케인으로 500톤이나 되는 증기선이 침몰했고 선원들이 모두 몰살했던 그 바다에서, 그들은 6미터의 작은 보트로 살아남은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킹 하콘 만의 육지에 다다른 섀클턴은 다음 날 다른 두 명의 선원들과 함께 동쪽에 있는 허비스크로 가서 구조 요청을 하기로 발표한 후 다시 여행을 떠나듯 가벼운 행장으로 출발한다. 설산의 지형이 워낙 험난했기에.

 

섬의 지형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설산을 이 봉우리로 올라갔다 저 봉우리로 올라갔다 13시간 이상을 헤매게 된다. 산을 내려오다 얼어 죽거나 썰매타듯 내려오다 죽거나 매 한가지. 죽기를 각오하고 썰매 타듯 미끄러져 내려온 그들은 다시 한 번 기적을 경험한다.



노르웨이의 포경기지에 도착하다

다시 봉우리를 오르고 드디어 새벽 6시 반 포경기지 사람들의 기상을 알리는 희미한 기적소리가 들렸다. 이어 7시 정각에 울린 기적 소리.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불과 몇 km 거리에 사람들과 그들의 배가 있다. 이제 엘리펀트 섬에 남겨진 대원들을 구조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도 시퍼런 얼음 위로 길을 만들어 가며 오후 3시 드디어 스트롬니스 기지 외곽에 도착했다.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던 일을 그들은 해낸 것이다. Seamanship. 포경 기지의 사람들은 그 세 사람에게 최대한의 정성과 예의를 보여준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 기적처럼 돌아온 이들에 대한 뱃사람으로서의 경의였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삼손’호를 타고 킹 하콘에 있을 세 사람을 구조하러 간다. 그 사이 섀클턴은 포경기지의 대표인 쇠를레와 엘리펀트 섬에 조난돼 있는 나머지 대원들을 구조할 계획을 세운다. 삼손호가 세명의 대원들과 커드호를 싣고 돌아오자 쇠를레는 포경기지 클럽하우스에서 이들을 위한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준다.

 

이제 엘리펀트 섬에 가서 나머지 대원들을 구조해와야 하는데 영국인 소유의 서던 스카이 호를 빌릴 수 있었으나 악천후에 얼음 장애물을 만나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아무 보호장치 없이 6m의 보트를 타고 살아돌아온 것이 새삼스러웠을 것이다.

 

다른 배들로도 시도했으나 접근이 불가한 상황. 시간은 계속 가고 섀클턴은 사방으로 빌릴 수 있는 다른 배들을 알아보러 다닌다. 이 때의 섀클턴의 모습을 동료 워슬리의 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때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 섀클턴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에 날마다 주름이 새로 늘어났고, 검고 두껍던 머리카락은 차츰 흰색이 되어 갔다. 맨 처음 구조작업을 나서는 그의 머리는 완전한 회색이었다. 

 

 

영국의 디스커버리 호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섀클턴은 칠레 정부로부터 ‘얼음이 없는 바다에서만 사용하라'는 조건 하에 작은 증기선인 ‘옐코' 호를 빌려준다. 사우스 조지아 섬을 통과하며 섀클턴은 지난 일들을 차분히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시기를 되돌아보면 엘리펀트 섬과 사우스 조지아 섬 사이의 폭풍이 몰아치던 바다와 빙원에서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했으며 우리를 이끌어주셨다고 확신한다. 사우스 조지아 섬 내륙의 이름 모를 산과 빙하를 36시간 동안 행군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늘 셋이 아니라 넷인 것 같았다. 당시엔 대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워슬리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장, 산을 넘을 때 왠지 또 다른 누군가가 옆에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크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구조의 순간

한편 섀클턴이 커드호와 함께 떠난 후 엘리펀트 섬에 4개월간 고립돼 있던 대원들은 서서히 섀클턴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예상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돌아왔음직한 시간이 이미 지났음으로. 통솔자였던 와일드는 그와 다른 네명의 선원이 남서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디셉션 섬으로 갈 계획을 발표하지만 반길 수 없는 계획이었다. 이는 커드호와 떠난 동료들의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하지만 배를 수리할 재료들을 모으고 준비를 시작한다.

 

이제 다시 읽어도 짜릿한 구조의 순간이 펼쳐진다.

8월 30일 낮 12시 45분. 텐트 밖에서 조개를 캐고 있던 마츤이 소리쳤다. “배가 왔어요!”

 

잠깐의 정적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텐트를 부수며 뛰쳐나간 이들에게 배가 점점 해안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흥을 이기지 못한 대원들이 발을 구르며 괴성을 질러댔고, 해안선에서 약 150m 정도 떨어진 바다에 작은 배들이 내려진다. 동료 섀클턴과 크린의 모습도 보인다. 섀클턴은 초조한 마음으로 해안가에 뛰쳐나온 대원들의 숫자를 쌍안경을 통해 얼른 세어본다. 정확히 22명.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만치 가까워오자 일제히 외친다. “모두 무사합니다!”

“2시 10분, 전원 구조!” 워슬리는 일지에 이렇게 기록한다. “마침내!! 2시 15분, 전속력으로 전진!”

 

당시의 섀클턴의 심정은 푼타 아레나스로 돌아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난다.

드디어 해냈소. …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나왔소.”



섀클턴은 다시 남극 항해를 떠나요

어니스트 섀클턴 경을 통해 따라가는 남극 항해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 인내 인내이다. 사진을 통해 봐도 상상이 불가능한 저런 어려움도 참고 견디며 여정을 이어가는 원동력인 탐험심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우주 여행을 가래도 가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자원해 면접까지 거쳐 선발된 27명의 탐험대원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섀클턴은 다시 로스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영국의 오로라 호가 있고, 이미 세명은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곧바로 남극에 가기로 한다. 이쯤되면 병이지 싶다.

 

로스해 탐험대의 구조작업 이후 영국으로 돌아온 섀클턴은 전쟁중이었던 고국을 위해 참전을 원했으나 고령탓인지 ‘선전'이나 ‘운송책임' 등의 임무만 주어졌다. 전쟁 시대에는 전쟁 영웅만이 회자될 뿐.

  

전쟁이 끝난 후 1920년에 섀클턴은 다시 극지방 탐험을 위해 후원자를 모았고, 인듀어런스 호의 옛대원들에게 다시 남극으로 가자는 편지를 띄운다. 편지에 화답해 돌아온 몇몇의 동료들과 작은 퀘스트 호에 몸을 싣고 사우스 조지아를 지나 포경기지에 도착했다. 

 

새벽 두시 섀클턴과 얘기하던 맥클린은 이제부터는 편안하게 살라는 말을 한다. 섀클턴은 “자네는 항상 나보고 뭔가를 포기하라고 하는군.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뭘 포기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드라마틱하게 이 순간을 마지막으로 섀클턴은 급작스런 심장 발작으로 인해 숨을 거둔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 그의 시신을 영국으로 옮기려던 그들은 남편을 사우스 조지아에 묻어달라는 섀클턴의 아내 에밀리의 편지를 받는다. 자유로웠던 그를 좁고 복잡한 영국의 공동묘지에 가두어 둘 수 없노라고. 그는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노르웨이 선원들 사이에 안장됐다.



섀클턴의 리더쉽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의 죽음의 순간에 알 수 있었던 그의 나이. 생각보다 너무 젊어 놀랬다. 하긴 그 당시 마흔 후반과 지금의 그 나이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느껴졌던 그는 믿을 수 있는 어른 같은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을 사람.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려줄 사람.

 

섀클턴이 보여줬던 모든 말과 행동 뒤에는 대원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는 단 하나의 생각이 있었고, 매 순간 이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침낭을 제비뽑기 할 때에도 성능이 나은 침낭이 일반 선원들에게 뽑히도록 조작(?)하고, 가장 추운 선실은 자신이 사용하고, 구조 요청을 위한 위험 천만한 여정을 연이어 자신이 포함돼 끌어간 것 등의 책 전반에 나타나는 사실들을 보면 말이다.

 

위기의 상황마다 그가 발휘했던 탁월하고 따듯한 리더쉽의 핵심에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황이 닥치면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평소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힘과 인내심을 그의 대원들에게서 이끌어 냈다. 매순간 그는 대원들을 똑같이 존중했다.

 

그 지옥같은 탐험 여정을 같이 마쳤던 동료들은 그가 이후 남극 재탐험으로 연락했을 때 기꺼이 돌아왔다. 인간적인 신뢰가 바탕이 된 그들은 어떤 일이라도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리더의 부재가 느껴져 섀클턴에게 빠져 읽었던 걸까.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그린 것 치고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덤덤하다. 그저 시간의 수순대로 구술한 느낌인데, 섀클턴의 인간미에 폭 빠져 읽게 된다. 그때의 인듀어런스 호의 대원들이… 내심 부럽다.

 

섀클턴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또 한 번의 좌절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그것이 성공보다 더 위대한 실패가 되리라는 것을.
훗날 세상으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실패한 ‘인듀어런스 탐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