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일상

내게는 개와 늑대의 시간

소라언냐 2023. 9. 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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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양치기들이 자신들의 개들이 늑대와 분간이 가지 않았다는 저녁 해가 질 무렵의 시간대.

 

 

제게는 그렇게 계절 감각이 흐려지는 시기가 있었어요.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의 특성상 계절이 북반구와는 완전히 반대였는데, 나고 자란 한국에서 몸으로 익힌 계절 감각은 17년간의 호주 이민 생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헷갈리더라고요 :P

 

특히 한가위 추석이 돌아오면 한국의 초가을과 비슷해진 날씨와 온도에 지금이 초가을에서 가을로 깊어지는 계절인지 늦봄에서 초여름로 넘어가는 계절인지 순간 모호해져 곰곰 날짜를 상기해야만 여름으로 달려가는 때로구나 기억해내곤 했거든요.

 

Photo by Foursquare

 

호주 시드니 근교의 Strathfield라는 동네는 한국 교민들이 비지니스도 많이 하고 많이 거주하기도 하는 동네랍니다. 

City Rail이라는 시드니의 트레인 노선들이 겹쳐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요.

 

저도 이 곳에서 지금도 호주 생활을 돌이켜보면 다섯 손가락에 꼽는, 고마운 지인들을 만났고 함께 일했거든요.

 

특히 추석을 앞둔 금요일 퇴근길에는 추석이 명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추석 떡값처럼 챙겨주시던 회사의 보너스와 한인 마트에서 구입한 송편과 전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 트레인을 기다리고 있자면, 따듯한 오후의 햇살에 여기가 호주인지 한국인지,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모호해졌죠.

 

그렇게 아스라해진 계절 감각과 공간감각이 제게는 굉장히 임팩트가 있었던지 지금도 그렇게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마치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듯한 꿈을 자주 꿉니다.

 

 

한국에서 추석 연휴를 앞둔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나 Strathfield station 이미지를 구글해보다 소오름이 끼쳤어요.

바로 사진 속의 저 벤치였거든요.

짙은 파란색 페이트 칠이 된 나무 벤치에서 금속 재질로 바뀌었을 뿐 위치나 풍경이 그대로예요.

 

저 벤치에 앉아 계절을 헤아리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나...

그런 저를 바라보고 있는 꿈 속의 또 다른 나.

 

 

 

게다 어제는 이웃으로부터 헤이즐넛 데이츠를 선물 받았거든요.

 

내게는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한가위 연휴 전날.

호주에서 종종 먹었던 데이츠까지 먹으면서 Strathfield station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또 아른아른해지네요. ㅎㅎㅎ

 

 

그저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겨둡니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