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탁기를 예찬하다
세탁기를 살 때 고려할 점을 물으면
귀국 전 살림들을 모두 처분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가전제품들을 구입하러 전자제품 매장에 갔어요. 냉장고부터 세탁기까지 보통 혼수 준비하는 커플처럼 모든 살림이 다 필요했거든요.
매장 직원분은 발에 스프링을 다신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희를 비스포크 등 최신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셨지만... 저희는 작고 간단한, 예전 제품들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매우 실망하신 표정을 감추지 않으시며 -.- 매장엔 없다며 온라인으로 구입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다들 큰 용량 세탁기를 권하시는데
매장에는 최신형 대형 세탁기들이 주로 진열되어 있었고, 대형 세탁기 하단에 작은 양의 빨래를 수시로 세탁할 수 있는 소형 세탁기가 하단에 따로 달린 제품도 있고, 건조기까지 갖춘 제품도, 인공지능 세탁기도 있더군요.
세탁기를 구입하면서 주위 분들의 추천을 받으면 이불 빨래도 있고 하니 큰 사이즈를 사야 한다고 입을 모으셨어요.
저희는 2인 가구인데도 말이죠.
진짜 큰 용량의 세탁기가 꼭 필요할까요?
한국에 와서 좋았던 점들 중 하나는 집 근처에 빨래방이 참 많다는 점이었어요.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가 여러 대 있어 아무 때나 가도 바로 돌리면서 밀린 통화도 하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면서 나름의 제 시간을 누릴 수 있었거든요.
근처에 이용할 수 있는 빨래방이 있으니 이불 빨래 때문이라면 굳이 대용량 세탁기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은 용량의 세탁기를 찾아봤더니 제일 작은 게 3kg 아기 빨래 전용 세탁기였어요. 귀여워라! :D
후기들은 대부분 전용 세탁기를 갖추고 아기 빨래만 따로 하기 위해 별도로 구입해 쓰는 용도라고 했어요.
2년간 3kg 세탁기를 사용한 후기를 공유합니다
- 우선 세탁기 가격이 매우 저렴합니다.
- 기능이 직관적이고 간단해 거의 모든 기능을 야무지게 사용합니다.
- 빨래감을 모으지 않고 그때그때 생길 때마다 세탁이 가능해요.
- 이는 옷 가지수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됐죠.
- 헹굼을 2-3회 해도 세탁 시간이 최대 30-40분으로 짧아 전기와 물 사용량을 아낄 수 있어요.
- 빨래가 빨리 끝나니 세탁 시간 때문에 발이 묶이는 일이 없어요.
- 빨래가 소량이니 건조대에 널 때에도 널널하게 간격을 두고 쉽게 널고 빨리 말라요.
- 아기 빨래 전용 세탁기라 빨래 삶기 기능도 있답니다.
- 성인 2인 빨래라도 흰 옷과 색깔 옷을 구분해 세탁하니 통이 작아 세탁이 어려웠던 적은 없었어요.
- 겨울철 성인 파카 한 벌도 단독 세탁 가능합니다.
- 이불 등의 부피가 큰 세탁은 빨래방을 이용하면 세탁부터 건조까지 말끔히 해서 가져올 수 있어요.
큰 세탁기가 좋다고 세뇌된 건 아니었을까요?
2년을 사용하고 나니 제가 구입해 쓰고 있는 살림살이 중 가장 맘에 들고요.
그래도 혹시 대용량 세탁기가 좋지 않을까 고민했던 시간이 아깝습니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차도, 집도 모두 클수록 좋다는 게 정말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기업들이 광고하고 유혹하는 대로 크고 비싼 게 좋은 거라 세뇌돼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널린 빨래가 적어 홀랑~한 건조대를 보니 또 좋아 끄적여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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