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적 살림살이

3천원 청소기

소라언냐 2023. 7. 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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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호주에서 직관을 따라 이 곳, 여수로 이사했어요. (원래 순천이었던건 안비밀요 ㅎㅎ)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우리 부부는

이 소중한 장거리 국제 이사 찬쓰를 살려 살림을 더욱 줄여보자고 의견을 모았죠.

 

여수에 집을 구하고 살림들을 사다 나르기 시작합니다.

호주에서 쓰던 살림들은 거의 다 나누거나 팔고 온 덕분에 죄~ 다시 사다 날랐죠. 어디가 미니멀? 허허

공산품 쇼핑에 선택지가 간결했던 호주와 비교해 너무나 많은 옵션이 주어진 한국 온라인 쇼핑에 없던 결정장애가 생길 뻔 했어요.

 

 

한가지 한가지 살림들을 고를 때마다

같이 지내도 거슬리지 않을 소재로 만들어진 건지

오래 오래 쓸 수 있게 튼튼한지

수명을 다해 버릴 때 민폐 끼칠 소재는 아닌지

정말 꼭 필요한 건지...

정말 꼭 필요한 건지...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 몇번을 고심해 장만합니다.

 

 

무슨 청소기 종류가 이렇게 많지?

세탁기, 냉장고, 침대, 쇼파...

다 동거여부를 고심하게 만드는 아이템들이었지만

청소기! 얘는 달랐어요.

 

청소기를 사려고 써치하니 비스포크부터 기특하게 스스로 먼지통까지 비워주는

15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들이 촤르륵 나오더라구요.

 

하지만 제 아무리 비싼 청소기도 전기 충전을 해야 하며,

모터 소음과 타는 냄새가 나고,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청소기 자체를 바꾸는게 더 저렴하고,

먼지통 리필을 따로 구입해야하며,

흡입력을 맥스로 사용하면 집 청소를 한 번에 다 마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울 집 사이즈는 해당 사항 없어효 ㅎㅎ)

 

 

너는 내 운명

청소기를 쇼핑 리스트에 두고 순천 웃장 장날 구경을 갔다가 운명처럼 얘들을 만났어요.

꽃은... 돼써 넣어둬 넣어둬

 

 

참고로 뭔가 잘 안어울리는 듯한 조합이기는 하지만,

갈대 빗자루는 철.물.점.에서 판매합니다요. ㅋㅋㅋ

 

 

마음에 드는 건 비닐이 적게 사용된 가운데 제품이었지만

옆에서 깻잎이랑 상추, 호박들을 팔고 계신 할머님들이 제게 용도를 물으셨어요.

"방비로는 이 넘(세번째)이 좋아. 나머지는 싸리비여."

 

할머니 찬쓰로 제가 선택을 마치자 큰 소리로 철물점 사장님을 대신 불러주십니다.

"여기 장사가 누구여!?"

 

사장님은 쿨하게 3천원이랍니다.

옴마 이 가격 실환가용?

봉지 포장 따위 없이 빗자루를 둘러 메고 집으로 왔죠.

 

 

마끈 감아 비닐 감추기

 

 

집에 와서 다시 봐도 비닐은 아닌거 같아

마끈을 가지고 감아봤어요. 끝부분 리본 디테일로 앞뒤를 구분해줍니다.

결과물 뿌듯하나 손가락은 매우 퓌곤함 주의.

 

 

사용 후기를 공유합니다

<< 장점 >>

-  작동시 일체 소음 없어 사용 시간대 고민 없슴 (조용하기 짝이 없어 비질을 하는 나도 덩달아 조신히 빗자루 명상 가능)

-  청소기 모터 타는 냄새 없슴

-  청소기의 네모난 헤드가 못들어 가던 구석 사각지대 엑세스가 용이

-  유연한 커브

-  천연 소재라 실내에 걸어 두어도 거슬림 없슴

-  매우 착한 가격

-  에너지 효율 0등급은 없나요?

-  사용하는 동안 전선에 걸리지 않고 배터리 잔량에 쪼이지 않아요.



<< 단점 >>

-  허리가 아파요 끄응~ 최대 단점!

-  아직 길들여지기 전이라 그런지 간혹 갈대가 빠져요

-  가벼운 스티로폼 조각들은 쓸어 모아도 바람 불면 날아가요

-  짝꿍 쓰레받이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글을 쓰는 현재 이 아이는 베란다 청소 담당으로 역할이 바뀌었어요.

3천원 청소기 맘에는 드는데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제 미니멀 라이프 현자님께서 더 엄청난 청소 방법을 사사해주셨거든요.ㅎㅎㅎ

 

군 생활 때 익히셨던 바닥 청소법을 고집하시던 제 친정 아부지도 신박해하신 그 청소법!

제 아이디어가 아니라... 여기에 알려도 될는 지...

현자님께 상의 좀 드려야겠구만요. 하하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