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r
이 책은 이렇게 만나게 됐죠
왜 남이 읽고 있는 책은 더 재밌어 보이는가. 남편이 빌려와 옆에서 읽고 있는 책은 항상 궁금하다. 더욱이 소설이라니 더 그랬는데, 읽는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보이니 저 책 뭔지 몰라도 나도 읽어야지 하던 중 고맙게도 싸목싸목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게 된 책.
<<스토너>>라는 제목이 내겐 무척 생소했는데, 알고보니 이동진님의 리뷰를 보고 빌려왔다고 한다. 리뷰어들이 추천하는 책들에 대한 양가 감정(?)이 있는 나로서는 호감도 비호감도 아닌 첫인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내용을 볼까요
빈농의 집안에서 독자로 자라 땅만 보고 사는 부모를 닮아 자라던 주인공 윌리암 스토너. 대학에서 선진 농업기술을 가르친다는 군청 직원의 홍보를 받아들인 아버지의 권유로 컬럼비아에 신설된 농과대학에 입학해 공부하게 된다. 아버지가 입던 외투와 어머니가 달걀을 팔아 마련해준 학비를 가지고, 먼 외가 친척의 일들을 돕는 조건으로 숙식을 해결해가면서.
대학 2학년 교양 수업으로 들었던 영문학 개론 수업은 그의 인생을 그야말로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계기가 된다. 그가 혼자 다락방에 있을 때에도 존재감을 나타내던 영문학 개론 교수, 아처 슬론.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수록 아쳐 슬론이 수업 중에 했던 무미건조하고, 단조롭던 말들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는 스토너.
세익스피어 희곡과 소네트를 다루는 수업 중 아처 슬론 교수의 질문을 받고 스토너는 일순간 모든 익숙한 것들을 새로이 체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슬론의 시선이 윌리엄 스토너에게 되돌아왔다.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어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빡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커니즘에 감탄했다.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바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 했다.
이후 그 자신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버린 스토너. 도서관의 서가를 누비고, 다락방에 혼자 있을 때에도 마치 아처 슬론이 수업 시간에 질문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의 강력한 환상을 보았고, 친구가 없었지만 동료 학생들에게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다음 학기부터 농과 대학 수업을 듣지 않고 영문학 수업으로 전향한 스토너. 학부 막바지에 스토너를 눈여겨 보았던 아처 슬론과의 면담에서 그는 교육자가 될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어떻게 그걸 확신하느냐는 스토너의 질문에 아처 슬론은 유쾌하게 답한다.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윌리엄 스토너의 온 생애를 통해 흘렀던, 그가 주고 받은 사랑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었고. 그가 사랑했던 존재들에 대해 매순간 뜨겁게 최선과 책임을 다했던 그. 누가 감히 그의 삶이 무료하다, 답답하다 말할 수 있는가.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였지만 어떻게든 자식에게는 최선의 선택을 해주고자 애썼던 부모. 그가 학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했을 때도, 차이나는 집안의 이디스 보스트윅과 결혼하겠다 했을 때에도 묵묵히 그림자처럼 구석에서 자리를 지키던 아버지와 어머니.
처음 본 순간의 이디스의 외적인 매력에 끌려 결혼했지만 평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에서도 그는 집안일과 딸의 양육, 그리고 자신의 일까지 묵묵히 병행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삶에서 이디스가 차지하는 부분이 예전에 그가 희망했던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아질 무렵 딸 그레이스를 얻게 되는데,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남을 돌보는 일은 커녕 자신을 돌보는데에도 익숙치 않았던 아내를 대신해 스토너는 딸을 돌보는 대부분의 시간을 맡게 된다. 이디스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딸아이와 둘이 서재에서 보낸 따듯한 시간들. 어린 딸과의 깊은 애착 관계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젊은 학자로서의 집필 시간을 충만히 보낼 수 있었던 스토너.
중년 이후 만난 캐서린과의 사랑을 통해 그는 몸과 마음이 하나로 사랑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그해 여름 두 사람이 배운, 이른바 ‘기존 관념’의 기이한 점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두 사람은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별로 깊이 생각해 보지고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하는 수 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이 믿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체험이 먼저 찾아왔으므로, 이 새로운 발견이 오로지 두 사람만의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이처럼 ‘기존 관념’이 기이하게 달라진 사례들을 모아 보물처럼 간직해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 관념을 고수하는 세상으로부터 두 사람을 분리시키는데 일조했다. 또한 두 사람이 야단스럽지는 않지만 감동을 느끼면서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데에도 일조했다.
딸 그레이스가 혼전임신을 했고, 그것이 집을 떠나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깨달으면서 딸이 술을 마실 수 있음을 감사하는 장면은... 딸과의 애착 관계가 단단한 아버지이니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저 딸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 미정이 알코올 중독인 구씨를 그저 추앙하듯이.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웠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절망을 거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어긋나기만 했던 아내 이디스와도 죽기 전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아도 후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햇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주름 없는 젊은 얼굴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아주 먼 거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손이 이불 위를 움직여 그녀의 손에 가닿았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뒤 그는 스르르 선잠이 들었다.
또한 학부 시절 만나 영감을 주었던 데이비스 매스터스와 그의 학교 생활 내내 어려운 고비마다 도움을 주었던 고든 핀치와의 우정. 학과장 로맥스와의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중재자 역할을 해준 고든의 역할 없이 그가 정년 퇴임까지 그가 사랑했던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일을 사랑했던 스토너
이디스와의 결혼과 큰 집을 장만하기 위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이룬 것으로부터 만족감을 느끼는 그를 읽을 때에는 언뜻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생각 났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사는 남자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이반 일리치와 스토너의 다른 점은 스토너는 영문학 공부와 가르치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영감을 오롯이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수히 많은 일화들이 나오지만 그는 그가 사랑했던 가르치는 일 자체에서 오는 행복감을 포기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전장으로부터 캠퍼스로 돌아온, 어느 정도 연륜이 쌓였고 배움에 열심인 학생들을 보며, 교수로서 이렇게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매진하는 장면은 감동스러웠다. 그렇게 자각한 순간 순간이 얼마나 충만했을까.
'넌 무엇을 기대했나?'
죽기 전 스토너는 자신에게 이 질문을 세 번 반복해 묻는다. 이 질문이 내게 그토록 엄중하게 느껴진 이유는 내가 스토너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 이입해 읽었기 때문이리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모나지 않고, 나름의 책임을 다하며.
하지만 죽어가는 스토너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내게는 역설적으로 그는 그 누구보다 열렬한 삶을 살다 간, 상대적으로 다 이룬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늙은 노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함께 참전하자는 벗들의 기대도 저버리고, 학과장과의 불협화음으로 빚어진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고자 한 길을 묵묵히 간 사람.
마지막 장면에서 스토너가 자신이 썼던,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책을 보며 하는 생각이 우리 인생에 대해 말해주는 듯 마음이 저릿해진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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