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4.3에 침묵하지 않겠다 <<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

소라언냐 2024. 11. 2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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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렇게 만나게 됐죠

한강 작가의 책은 몇년 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던 <<채식주의자>>로 처음 만나게 됐다. 뭣도 모를 때 읽었던 책이라 다 읽고 나서도 눈만 껌벅껌벅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런 책들일수록 외려 문득문득 책 내용이 떠오르면서 작가는 혹시 이런 얘기를 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곱씹게하는 즐거움이 있다.

 

도서관 서가를 서성이다가 동작가의 <<흰>>이라는 작고 얇은 책을 그 자리에서 다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책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던 책이었다고. 시집을 읽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 특유의 문체는 ‘흰 것’이라는 것에 대해 밀도있고 촘촘하게 썼다. 다 읽고서는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의 그 묘했던 감정과 겹쳐 ‘이 작가는 무언가에 끈질기게 매달려 그 끝을 보는 작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듯.

 

그렇게 만났던 한강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기쁘기 짝이 없다. 마치 알고 있던 언니가 수상한 것 같은 이 기쁜 마음은 뭔가. 내 생전에 나의 모국어로 씌인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내 연배 비슷한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을, 그것도 광주 5.18과 제주 4.3에 관해 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감사했다.

   

한편 제주 4.3이 주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을 읽을까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책을 사 두고도 다 읽고 나면 또 며칠은 그 잔혹한 내용 때문에 문득문득 마음 쓰일 것이 예상되어 시작하지 못하고 있던 차 독서모임에서 다음에 함께 읽을 책을 정하게 됐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추천했다. 작가가 용기내어 쓴 이 책... 읽지 않을 수 없잖은가.  

 

문체는 *표로 구분하지 않았다면 따라가기 어려웠겠다 싶을 정도. 버지나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들을 종횡무진한다. 



작가의 감정 소모에 부채감이 생기네요

책의 내용 중 주인공 경하는 작가로 광주 5.18을 주제로 집필한 책의 출판을 마친 상태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연상되는 부분. 작가가 써놓은 글을 읽는 것조차도 이렇게 망설여지는 끔찍한 사건인데 그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자료들을 수집하고, 구술문들을 듣고, 정리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펴낸 작가의 그 이후의 감정적 소모는 또 어떠할 것인가. 

악몽은 물론 그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한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5.18을 주제로 한 <<소년이 온다>>와 4.3을 주제로 한 이 책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한 작가 자신의 상태를 4.3 이후의 가족의 역사를 뒤쫓던 인선의 입을 빌어 적은 듯 읽혀 마음이 아프다.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그게 엄마가 다녀온 곳이란 걸 나는 알았어.

 

영화 촬영을 마친 배우들도 그 배역에서 빠져나오려면 한동안 시간이 걸린다는데, 주인공 경하도 집필을 마친 후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삶의 의지를 잃고 매일 유서를 쓰고 다듬는 일을 반복한다. 매일밤 같은 악몽에 시달리면서. 죽어야 끝날듯한 상실감과 무력감.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읽었을 때와 똑같은 그 끈적끈적하고, 습하고, 처절한 답답함과 무력감을 이 책을 읽으며 답습할 줄이야.  



꼭 생시같은 꿈

매일 밤 경하는 악몽을 꾼다. 등신대 크기의 통나무들이 심겨져 눈을 맞고 있는 듯 보이는 야트막한 벌판을 걷는데, 봉분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 이 통나무들이 묘비인가 싶은 순간 이 곳이 바닷가이고 밀물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속절없이 잠기는 봉분들을 보면서 아직 잠기지 않은 봉분의 뼈라도 위로 옮겨야 하는데 삽도 없고, 그 많은 무덤들을 혼자 어쩔 줄 모르다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달리는 꿈. 꼭 생시같은 꿈.

 

일을 하다 만난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인선. 사진작가이자 다큐 영화 작업을 하고 있던 그녀는 제주 출신으로 모친의 치매 증세가 심해서 간병을 위해 제주로 가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서로 합이 잘 맞았던 둘은 경하가 매일 꾸는 꿈에 대해 이야기하자 인선이 함께 작업하겠노라 약속했지만, 서로의 사정이 엇갈려 몇년째 늘어지고 있던 상황. 

그렇게 끝없이 연기되고 있는 바로 그 상태가 그 일의 성격이 되어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얼굴 위에 쌓이는 눈

작가는 여러 장면에서 눈이 쌓이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경하가 꾸는 악몽에서도 우듬지가 잘린 통나무 위에 쌓인 눈, 손에 닿으면 직육면체의 결정이 보이다가 물방울로 변하는 눈, 학살 당한 인선 모친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시신 얼굴 위에 녹지 않고 쌓이던 눈, 가출했던 인선이 모친의 꿈에 다섯살 어린 아이로 나타났는데 그 아이 얼굴에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인선이 죽었다고 생각했었다는 모친, 그리고 경하가 제주에서 인선의 집을 찾기까지 헤매는 모든 장면에서 눈의 밀도, 결정, 쌓이는 장면을 반복해 묘사한다.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절단된 손가락 봉합 부위를 찌르는 신경 치료  

목공방에서의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된 인선은 경하에게 신분증을 가지고 병원으로 와달라 부탁한다. 인선은 봉합 수술 후 3분마다 한 번씩 봉합 부위를 바늘로 찔러 새로운 피를 흘리면서 점차 아물게 되는 고문과도 같은 치료를 받고 있다. 접합 부위의 신경이 죽지 않도록. 고통스러운 치료를 피하려 손가락을 포기하려 해도 환지증은 평생을 가는 통증이라니... 이 끔찍한 치료를 피할 길이 없다. 어쩌면 4.3 유족들의 고통을 이렇게나 선명하게 비유를 했을까. 살아남은 것을 천운이라 할 수 있을까.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에 혼자 있을 자신의 새 아마에게 당장 오늘 가서 먹이를 줘야만 살릴 수 있다는, 경하가 생각해도 저렇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친구였던가 싶을 만치 생뚱한 부탁을 한다.



양안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새는 동시에 두 곳을 바라보는 셈이다. 제주 4.3을 겪고 트라우마를 가진 채 살고 있는 사람들. 사과는 커녕 입밖에도 내보지 못했던 상처를 가진 채 살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겹친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사는 사람들. 

 

4.3 사건으로 15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와 고문 후유증으로 손을 떨던 인선의 아버지. 가끔 멍하게 초점을 잃고 앉아 있으면 모친은 손에 잡히는대로 고구마나 귤 뭐라도 인선에서 주며 아버지 입에 넣어드리라 했다고. 인선이 입에 무얼 넣어드리면 꿈에서 깬 듯 인선을 보고 살며시 웃었다는 부친.

마치 두 세계를 사는 사람 같았어요. 한 눈으로는 나를 보고 다른 한 눈으론 내 몸 너머 다른 빛을 보는 것같이, 어둔운 방인데도 부신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어요.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 같은 걸까.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놓이지 못하는 것은 인선의 모친도 마찬가지.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평생 이부자리 밑에 실톱을 깔고 잤다는 내용.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런 트라우마는 DNA를 통해 전해지는 것인지... 평소 어른스럽고 침착한 인선답지 않게 18세 가출한 경험이 있다. 가슴에 불덩이 같은게 명치께에서 계속 끓어오른 것 같았다는. 결국 인선 역시 모친이 끝내 알아내고자 했던 외삼촌의 마지막을 더듬는 일을 마무리하면서 4.3의 진실 앞에 마주 서게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경하도, 읽고 있는 독자인 나도 소설 속의 상황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호하다. 누가 죽은 자인고 누가 산 자인지 알 길이 없는 상황. 시력 양쪽의 이질감을 하나의 상으로 맞추기 위해 수시로 고개를 갸웃거려야 하는 새처럼, 내가 미친 건지 제 정신인지 분간하기 위한 끊임 없었을 자기 검열. 

 

그날의 일은 일어난 적이 없는 척, 아니 현기영의 <<순이 삼촌 - 해룡이야기>>처럼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천재지변 같은 일을 당한 것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가면서 침묵한 채 살아가는 유가족들. 

 

이제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은데 하도 살벌하게 당했던 유가족들에게는 여전히 ‘낡은 공포심’이 휘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려움은 이성을 마비시키니까. 유족 회장은 사형 언도를 받았었고, 아직도 4월이 되면 제주 거리의 현수막들은 4.3 빨갱이 운운하면서 자신들이 건재함을 과시하는 무리들이 실존하니까. 

건강해 보여도 방심할 수 없어.
아무리 아파도 새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횃대에 앉아 있대. 포식자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 거야. 그러다 횃대에서 떨어지면 이미 늦은 거래.

 

 

작가는 인선의 입을 빌어 어쩌다가 이렇게나 참혹한 4.3이 발생했는지 말한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 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제주 4.3을 알고 난 후부터 나는 제주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다. 아니 어쩌면 되도록 피하고도 싶을만치. 배를 통해 제주에서 육지로 수송되던 수용인들 중 강보에 싸인 죽은 아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몸부림치다 끌려가는 아기 엄마를 그저 쳐다볼 뿐 총부리 앞에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앞으로 걸어야 했던 그 천여명의 사람들의 마음이… 어쩌면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과 비슷했을까.

 

책 몇 권 읽은 간접 경험만으로도 이럴진대 그 고립된 섬에 갇혀 공권력에 무참히 당했던 사람들의 상처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고통스러워도 말해야 하고, 공유해야 하고, 직시해야 하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음을 인정하고 사과 받아야 한다. 진정한 사과를 통해 제주 4.3의 유족들의 한이 풀리고 상처가 치유되어야 나같은 사람들도 치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아름다운 섬 제주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한 사람은 날마다 수십 차례 비행기들이 이착륙하는 활주로 아래서 흔들리며, 다른 한 사람은 이 외딴집에서 솜요 아래 실톱을 깔고 보낸 육십 년에 대해서.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하고 도움을 받았던 여러 책들과 작가들에게 감사의 글을 남겼다. 한강 작가의 인터뷰 중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내가 이 글을 써도 책으로 출판이나 될지 걱정하던 시간들이 많았다는 내용을 접했다.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남겨 준 그들과 한강 작가에게 깊이 감사한 마음을 이 글을 통해 남긴다.

 

 

제주 4.3을 수면 위에 올리다 <<순이삼촌 - 현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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