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땅을 매개로 한 계급투쟁 <<태백산맥 - 조정래>>

소라언냐 2023. 8. 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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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太白山脈 )

 

조정래 대하소설

 

 

작가 조정래님과 부친을 소개합니다

고흥에서 태어난 부친 조종현은 13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만해 한용운 스님을 총재로 한 승려들의 독립운동 비밀결사 ‘만당'을 결성하고 재무위원으로 활동했고, 일제시대에 일본 도쿄 고마자와 대학에서 불교학을 연구한 후 일본 불교의 대처승제를 따라 박성숙과 혼인하여 둔 4남 4녀를 두었다. 작가 조정래는 차남으로 태어났다.  

 

절 대중들의 선거로 선암사 주지로 당선되었다가 반대파의 모함으로 환속해 벌교상업고등학교, 광주제일고학교, 서울 보성고등학교 등의 국어 교사로, 우석고등학교(현 고려대 부속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근무했고, 불교 관음종 총정으로 추대되었다. 다수의 시조집과 동시 등의 아동문학집 발간했다.

 

1943년 순천 선암사에서 조종현의 넷째, 차남으로 태어난 조정래는 1962년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 67년 시인 김초혜와 결혼.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과 <<선생님 기행>> 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한 후 여러 작품을 출판했다. 땡전뉴스로 서슬 퍼렇던 시절 1983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해 1989년에 완간했다. 그 외 <<한강>> <<아리랑>> 등 다수의 작품을 출판했다. 

 

<<태백산맥>>은 원래 일제침탈기 - 6.25 - 5.18 등으로 이어 현대사를 총망라 할 계획이었지만 작가의 정신적 체력적 한계로 볼륨을 줄였고, 재충전기를 거친 이후 해당 이야기는 <<한강>> 등의 장편으로 다시 엮었다고 한다.

 

 

<<태백산맥>> 익히 알고는 있던 책이었죠

대학 때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열 권짜리 장편인 탓에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태백산맥>>. 총학에서 간부를 맡았던 선배가 대학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술자리에서 거듭 강조했던 탓인지 나와 친했던 친구들 중 몇은 그때 도서관에서 열심히 대출들을 해가며 읽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왜 그리들 과묵했던 건지 그렇게 매일 붙어다니며 수다를 떨었어도 그 책에 대한 얘기를 깊게 한 기억이 없다. 분명 했을텐데 내가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는 걸까. 여튼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좀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책.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안다고 하지 말 것. 

 

선배는 항상 왜 94학번부터 귀신같이 총학에 들어오는 새내기가 없는가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런 하소연을 듣고도 뭘 또 나까지 굳이 학생운동을… 하면서 트렌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게 나의 대학 시절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은 다음 느끼는 점은 내가 그때 읽었더라면 나는 곧장 총학으로 뛰어갔을 것이다에 한 표. ㅎㅎㅎ

 

이제 나도 정말 궁금하다. 어쩌다 우리 세대는, 정확히 꼭 짚어 94학번부터는 총학에 발걸음을 끊었던 것일까? 나는 왜 그토록 우리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을까?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궁금이라도 했을테지만… 소설책만 한 번 읽었더라도 보이는 것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데 그때는 제주 4.3도 여순사건도 나의 우주에는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태백산맥>>을 읽고 새로이 알게 된 건...

소설은 서민영 선생의 입을 통해 동학운동이 봉건 양반-상놈 계급제도 타파와 청일 등의 외세 거부가 본질이었음을, 그런 운동이 민중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는 점과 일제 식민지, 해방 등의 역사를 통해 땅을 매개로 한 지주-소작농의 갈등의 역사였다는 점을 말한다.

 

해방 후 남북 공히 농지개혁을 약속해 정부를 세웠지만 현재의 상태는 뒤로하고 일단 약속은 누가 지켰는가. 2018년 문대통령의 평양 방문시 보여줬던 대동강변 워터뷰가 보이는, 나름의 고급 아파트들에는 항일 독립 운동가들이 주로 살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의 창피하고도 복잡한 심경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열 권 책의 그 방대한 스토리를 서평 하나로 줄이기는 불가능하니 기억에 남았던 점을 남겨 두려고 한다. 해방 후 남한 단독 선거를 치뤄 정부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었던 이승만의 야욕에 반발한 제주도민들. 여순 사건은 제주 4.3 진압을 거부한 육군 14연대의 항명으로 시작된다. 군인의 숙명인 상명하복을 어기면서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럼에도 같은 동족을 죽일 수 없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빨갱이라는 칠을 하고 니가 죽이지 않았으니 너를 죽인다는 정부. 제주 4.3 사건을 다루었던 <<순이 삼촌>>에서 읽었던 내용이 고스란히 겹친다.

 

등장인물들이 매우 많지만 염상진, 하대치, 외서댁, 안창민, 손승호, 서민영, 이근술, 김범준, 김범우, 염상구, 권소장, 심재모, 강동기, 마삼복, 김복동 그리고 지방 유지들 패거리와 그들의 자녀들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양쪽의 이념에 몰입한 사람들, 이데올로기보다는 민족이 먼저라는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다 필요없고 내 돈 지켜줄 일본과 미국의 한 주로라도 편입되었으면 하는 사람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민낯을, 지주들이 사학재단을 세운 이유를, 6.25 불법 남침의 프레임을… 이 모든 것이 땅을 사이에 둔 계급 갈등이었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 

 

소작농들을 버러지 취급하던 지주들. 그런 소작농들의 표를 얻으려 거짓 농지개혁을 약속했던 정치인들, 그런 눈가림 농지개혁마저 피할 심산으로 우후죽순 생긴 사학재단들. 해방 후 자신들의 죄를 알아 스스로 숨었던 일제 순사 경력자들이 다시 제자리가 아니라 돌연 승진해 돌아오는 광경과 이에 맞서 스러져간 젊음들을 지켜봐야 했던 하노인의 독백을 통한 자기위안은 눈물겹다.  

 

이런 배경으로 이해하자면 현 대통령과 이승만의 자유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보수 여당이 보여준 그 동안의 기함할만한 언행들은 모순없이 이해가 된다. 귀족노조, 노조부패, 노조의 회계 투명화. 뉴스만 보면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국민이 더 이상 아닌 듯 보인다. 노조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노조가 국고로 운영되는 것처럼, 아무런 회계처리도 하지 않는 것처럼 기만하는 프레임. 국제노동연맹의 경고도 무시하고 지속되는 탄압에 보수 성향 언론들마저 우려를 표하는데도 그들을 지지하는 30%여의 지지층을 놓지 않으려 거짓말을 한다. 후보시절 했던 개사과. 우리가 당장 니들 표가 아쉬워서 사과는 한다만 니들이 어쩔건데… 지주들의 입심찬 목소리가 들린다.

 

두렵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그때에도 만에 하나 헌재에서 탄핵 가결이 나면 비상계엄령을 내릴 준비를 했던 정황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설마 가결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손을 놓고 있던 그들이 당했던 탄핵. 두려움은 그런 그들도 학습이라는 것을, 진화라는 것을 한다는 점이다. 점점 더 법 기술자들이 늘고, 뭉치려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을 검찰에서 다루고, 무죄 판결된 건을 재수사한다. 검찰공화국을 이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눈 뜨고 개돼지들에게 탄핵을 당해 쫓겨나는 꼴을 두 번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심을 보는 듯 가열차다.

 

 

<<태백산맥>>을 읽어야 하는 이유

<<태백산맥>>에서 작가의 태도는 좌향좌이다. 내 생각이라는게 없었을 대학 시절에 읽었으면 당장 총학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리라 생각이 들만큼 어느 정도 선동적이다. 마오쩌둥의 홍군과 같이 인민군들은 인간적이었으며 그들이 약속한 대동세상을 이뤄낼 자질이 충분한 사람들처럼 묘사되었고, 군경들은 악랄하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내게 더 중도적으로, 사실적으로 읽혔던 당시의 상황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다. 자의든 타의든 산폭도가 되어버린 사람들과 군경 사이에서 밤에는 산폭도들에게, 낮에는 군경들에게 시달리며 보복 당하고, 소개 당하고, 죽임 당했던 그 민중들의 삶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태백산맥>>과 같은 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향우된 책들은 일부러 찾아내지 않아도 초중고등 교육을 통해 공부하고 시험보고 뉴스를 통해 평생을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기영와 조정래 같은 작가들이 일신과 가족들이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을 각오하고, 수없는 자기 검열을 통해 집필한 책들을 그저 좌향좌 된 내용이라 굳이 읽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저 지저분한 정치판에는 다 그놈이 그놈이라 관심 끄고 만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우리는 역사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이다. 청산을 해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노인의 독백처럼 영원한 것은 없기에 또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이면 우리 개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삶의 궤적을 따라 깨닫게 된 지혜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에너지를 분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위로가 된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래알을 올리는 심정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 아닐까. 믿기 어렵지만 정말 일어났던 일이라고.

 

전쟁이 끝난 후 북조선에서는 남한의 빨치산(partizan)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책임자들을 처형한다. 이 소식을 듣고 항의하는 이해룡에게 김범준은 당은 오류가 있을 경우 인민들 앞에 설 수 없으므로 역사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역설을 내놓는다. 어느 정도로 이데올로기에 심취하면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놀라운 것은 김범준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빨치산들은 행복했을까? 저 눈 덮인 겨울 태백산맥 자락에서 불조차 제대로 피우지 못해 얼어죽고, 굶어죽고, 총 맞아 죽는 것이 빨치산의 운명임을 알고도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역사의 물줄기에 뛰어든 그들은 아마도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에게 내가 믿는 바와 합일의 삶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니. 

 

 

 

<<태백산맥>>을 읽는 동안 준비해왔던 온라인 클래스 영상을 플랫폼에 심사 요청을 보냈다. 각각의 플랫폼마다 나의 동영상 수업 내용을 그들의 플랫폼의 요건에 맞게 구성을 바꿔서 올려야 하는 관계로 동영상 제작을 한 번 깔끔하게 해서 가능한 여러 플랫폼에 올리겠다는 나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다. 

 

그리고 늘어지는 심사기간. 6:4면 제너러스하다고 느껴질만큼 어이없는 수수료 정책. 가장 압권이었던 클래스ooo이라는 플랫폼은 1:9다. 놀랍게도 동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내가 1이다. 그게 싫으면 6:4도 있지만 대신 5년 계약 기간 뒤에는 나의 작업물의 저작권이 어이없이 그들에게 귀속되는 조건이다. 나는 현대판 소작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