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기부 호구 탈출 <<냉정한 이타주의자 - 윌리엄 맥어스킬>>

소라언냐 2023. 8. 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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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 (Doing good better)

 

책 커버 @예스24



 

독서모임에 조인하고 처음 같이 읽게된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 제목부터 맘에 들었다. 내가 ‘기부 호구’가 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줄 그런 책이리라 기대하고 책을 잡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기부 단체의 효율성 정량을 측정하는 이론이 소개되는 중간부분까지는 거의 의리로 읽었다고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 하지만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뒷 부분에 숨은 진주와 같은 내용이 있으니 끝까지 읽으면 왜들 이 책에 이리 호평 일색이었는지 이해가 된다.



작가와 옮긴 이를 소개합니다

1987년 생의 William MacAskill은 옥스포드 대학 철학과 부교수이자 비영리 단체 ‘Giving what we can’과 ‘80,000 Hours’의 공동 설립자로 기부문화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효율적 이타주의 (effective altruism) 운동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며, 옮긴이 정미영은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언론사와 NGO에서 근무한 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책 내용을 소개할까요

책의 핵심 내용은 말 그대로 남을 돕는 선행을 극대화 하는 방법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끈질기게 설득하는 내용이다. 착한 일을 할 때에도 성과를 따지는 냉정한 이타주의자. 읽는 동안 머리로는 수긍이 가면서도 ‘피곤하게 사네. 좋은 일은 그렇게 계산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기부하는게 어딘데...’ 하는 거부감이 줄곧 들었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선행을 ‘그냥 잘, 많이' 하는 것은 부족하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해, 선행의 결과를 극대화 하는 방법을 논한다. 효율적인 기부를 위해서는 내 직업까지도 고려할 대상이 된다는 것. 일례로 NGO 단체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영국에서 의사로 돈을 벌어 기부하는 것, 더 나아가 정치에 입문하여 국가의 복지 정책을 다룸으로써 보다 적극적이고 큰 수준의 기부를 한다는 예를 보았을 때에는 맞는 얘기지만서도 현실감을 잃은 듯한, 나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비춰졌다. 

 

 

하지만 읽던 도중 마음이 크게 바뀌게 된 계기가 생겼다. 책을 읽을 당시 호주에서는 산불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각종 모금이 이루어졌는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재난 구호용 성금을 경계하는 부분이 길게 나온다. 요점은 먼저, 해당 기관들이 그렇게 많은 액수의 성금이 들어오는 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점, 모금을 위한 경쟁이 심해져 negative sum으로 귀결된다는 점, 그리고 운영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후에 뉴스에도 나왔지만 Australian Red Cross에 부쉬 파이어 성금으로 모인 $180 million 중 $30 million만 산불 피해자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는 ‘future disaster(미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해둔다는 기사에 성금으로 이자 놀이를 한다는 비판이 이어졌었다. 누구를 위한 성금이었고, 왜 산불을 명목으로 모금을 했는가 그리고 왜 자기들 맘대로 미래 재난을 위해 모금액을 떼어두는가! 당시 동참했던 우리 부부도 이렇다면 구호성금을 기부하는게 맞는가 하는, 기부해봤자 얼마나 당사자들에게 가겠냐는 회의감이 들었고, 그때부터 이 책의 내용에 더 집중하게 되고 마지막 챕터까지 주르륵 쉽게 읽혔다는.



열정을 따르지 마라, 자본주의에서 소비는 투표다, 공정거래 제품을 구입하지 마라, 차라리 노동 착취 공장 제품을 사라, animal cruelty가 마음 아프다면 닭고기, 계란, 돼지고기 순서로 소비를 줄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손에 잡히는 안내를 받을 때는 내가 어렴풋이 긍정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의 이면을 파해쳐주는 그 집요함에 진심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서를 받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광범위한 사업을 하는 World Vision, Unicef와 같은 거대 자선 단체보다는, 콕 집어 Give directly, Development Media International과 같이 사업의 목표가 명확하게 포커스가 있는 단체들에 기부하는 것이 좋다는 실전 가이드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 대신 Take Action이라는 사이트에서 기부할 수 있다는 꿀팁도 준다.



기부단체는 종교단체가 아니잖아요

이 책에서도, 이 책과 거의 동시에 읽었던 <<Factfulness>>에서도, 기부를 망설이는 현재의 내가 경제적으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중의 상위 1%에 해당한다고 한다. 내게는 작은 돈이 어딘가에서는 일가족의 며칠 생계비가 될 수도 있다는.

 

요즘같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적인 연대가 화두로 떠오르는 때에 기부가 나의 가진 것에 감사함과 나보다 조금 운이 좋지 못한 누군가를 위한 마음의 연대라는 생각이 든다면, 또는 단순히 기부 호구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익숙한 기부처에 기부 전 반드시 읽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기부단체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깨어있는 지구 시민들이 많아져 자선단체들의 투명한 운영을 요구하고, 기부처도 쇼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