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공간 역시 분배의 문제 <<공간의 미래 - 유현준>>

소라언냐 2023. 11. 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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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이렇게 이 책을 만나게 됐죠

정재승 박사와 마찬가지로 tvN의 <알쓸신잡>에서 유현준 건축가를 처음 알게되었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홍대 건축대학 건축학과 전공 교수로 하버드 대학원 스펙에, 고생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던 외모와는 반대로 졸업 후 취업난을, 또 본인의 건축 사무소를 열고도 약 십여년 이상을 사무소 문을 닫아야 할 지 고민할 정도로 운영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덕에(?) 용돈이라도 벌어보려 칼럼을 15만원씩의 원고료를 받고 쓰기 시작했다는데, 그 칼럼들의 반응이 좋아 <알쓸신잡> 출연까지 이어지고 베스트 셀러 작가까지 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세바시> 강연에서 듣게 되었다. 역시 일어난 일들은 다 좋은 일이라고 해두자.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전에 이순신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동작가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자주 보였다. <<공간의 미래>> 책의 표지에 있던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라는 내용에 기대가 있었는데 그 부분의 포커스는 생각보다 적었고 지금까지 강조해왔던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역할을 하는 공간의 중요성’ 그리고 ‘공간을 통한 소셜 믹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책을 읽은 후 좀 더 서치해봤던 기사에 의하면 이 책은 유현준 작가가 기존에 썼던 칼럼들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였나. 이미 읽었던 내용들이 자주 중복돼 좀 실망스러웠다. 

 

 

노출되었으나 사적인 나만의 공간

귀국후 여수에 자리를 잡은 후 우리의 새로운 공간을 미니멀하게 유지하려고 공을 많이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나 남편이나 하염없이 아쉬운 것은 발코니 공간이다. 집에서 하루종일 일하고 밥먹고 쉬고 자고... 물론 걸어서 5분이면 해변에 갈 수 있고 지근거리에 바다를 낀 산책 코스가 잘 조성된 도시이건만 작가의 말대로 잠옷 입고, 슬리퍼 차림으로 잠깐잠깐 나가 있을 공간이 없다는게 이렇게나 답답한 일인줄 예전에는 몰랐다.

 

호주에서는 아파트에서도 자연스러웠던, 그 노출되었으나 사적인 나만의 공간 - 마당, 발코니, 베란다, 테라스. 작가는 한국의 주거나 환경에서는 이러한 공적이면서 동시에 사적인 공간이 없으므로 학생들은 편의점이나 피씨방을, 청년들은 카페를, 직장인들은 자가용을 구입하고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시의 사회적 공간이 해야 할 역할을 카페들이 하고 있노라고. 예리하다. 가히 카페 공화국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한국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책을 다 읽고 내친 김에 작가의 인터뷰와 칼럼들을 찾아봤는데... 엥~ 어쩜 매체가 다 조.중.동.매경. 어차피 건축이라는 거대 조형물을 제작하는데는 여러 이익관계자들의 의견 조율도 중요하겠지만 역시 자본이겠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작가는 이래서 저래서 건축법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지금 한국 부동산 가격이 이리 폭등한 이유를 두 거대 정당들은 다르게 주장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가 본인들의 임기 말에 무리하게 서둘러 부동산 3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누가 그 수혜를 입었는지. 그런데 그 수혜를 톡톡히 입은 그들과 같은 주장을 하는 부분들은 읽기 좀 거북했다. 그러한 선의(?)대로만 일이 되지 않았던 결과를 보고 있으므로.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분배의 방법

반면 임대주택 공급에 대한 부분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싱가폴 임대 주택 정책이 생각났다. 당시 싱가폴은 신혼부부에게 아파트를 무상 제공하고 아침에는 아파트 별로 조식도 제공해 아이가 없는 부부의 경우에는 함께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식당으로 가서 식사 후 출근하는 풍경이었다. 그땐 나도 결혼을 하고 얼마 안되어 만땅으로 받아 둔 대출금을 갚느라 진심 허리가 휠 때였고, 장거리 출퇴근으로 잠이 부족해 아침은 빵이나 커피로 떼우던 때였으므로 다큐의 싱가폴 주거 정책은 천국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달리 보인다. 획일적이고 통제된 생활. 젊은 노동력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무서운 국책이 보인다. 이 정책이 한국에서 이루어진다면 작가가 경고한 바처럼 주택을 담보로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왜 나오지 않겠나. 집중된 부의 재분배를 생각하면 임대주택이 현실적인 답안 같았는데, 이 또한 정해진 정책이 되면 거악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서늘한 한편 이도 저도 답이 없어 보여 답답하다. 모두가 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 땅을, 아니 허공으로 올라간 아파트 공간 조차 엄청난 가격차이가 있는 이 마당에, 어떻게 분배할 수 있을까? 

 

 

4도3촌 라이프 스타일

공감이 가는 내용은 ‘4도3촌'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여수를 포함한 한국 대부분 지방 도시들은 인구 감소로 인한 가까운 미래의 지방 소멸을 걱정한다. 때문에 관할 지역의 정주인구수 증가를 위해 각종 유인책들을 제안하고 있는데, 작가의 주장대로라면 정주인구수 증가에만 목을 멜 것이 아니라 ‘3촌’하는 그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작가의 말따나 어느 지역을 가도 ‘짝퉁 강남’ 같은, 병풍을 두른 듯한 똑같은 브랜드 아파트들만 즐비하니 ‘3촌'하러 굳이 거기까지 갈까 싶다. 코로나 시국의 여수에서도 핫하다 하는 숙소들은 모두 한적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정말 기후대가 같은 우리 나라는 지방마다 특색있는 개발에 목숨 걸어야 살아남을 것 같다.

 

 

공간을 통한 소셜 믹스... 좀 공허하군요

또 한가지 무릎을 치게 했던 부분은 영화 <기생충>에 대한 얘기를 꼽을 수 있겠다. 역시 건축가라서 같은 영화를 봐도 공간이 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는구나 했다.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밤에도 부자집의 어린 아이는 캠핑이 캔슬된 참에 마당에 혼자만의 인디언 텐트를 치고 거실의 넉넉한 사이즈 소파에서 자신을 지켜보며 자는 아빠 엄마와 워키토키로 통화를 하며 놀듯이 잔다. 같은 시간 가난한 사람들은 목까지 차오른 물에서 빠져나와 수해민 임시 보호소의 스티로폼 위에서 잔다.

 

계층간의 사다리가 사라져버린 지금 작가의 공간을 통한 소셜 믹스가 나는 공허하게 들린다. <<사피엔스>>에서도 읽었듯이 관용은 없는 우리 종의 이기심을 이용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슬프다. 그 말이 어쨌든 기득권의 파이는 지켜줘야 일이 된다는 듯 읽혀서.

 

 

다시, 미니멀 라이프

<<공간의 미래>>. 우리 부부의 미래 공간은 어떠해야 할까. 주말에 백야도 쪽으로 가서 간만에 등산을 했다. 정상에 오르니 탁트인 뷰와 함께 주위에 아무도 없어 힐링 제대로 하고 왔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혼자도 잘 사는 청솔모를 구경하면서 한숨처럼 저절로 나온 혼잣말 ‘아~ 이런데서 살고 싶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을 봤다.

 

다큐 속의 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나이가 들수록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인듯 싶다. 마음도 생각도 말랑했던 어릴 때는 인위적인 도시의 생활, 그게 그렇게 불편한 건지 괴로운 건지 상대적으로 잘 지각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공간의 부자연스러움을 깨닫게 되면 그 자연스러운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는 못배기는 거라고. 영혼도 또 그 영혼이 사는 몸도 모두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우리 부부의 가까운 미래의 공간은 스케치 중이다. 아니, 다시 생각하니 공간 디자인은 애저녁에 나왔으나 그 공간을 붙박이로 자리 잡고 살고 싶지 않달까? 백야도 섬 이런 곳에서 한 1-2년 살아보면 좋겠다 했는데 그러기엔 우리가 가진 살림이 나름 또 많다. 에효~ 거추장스러워. 역시 살고 싶은 곳곳마다 살아보자면 소유물이 적을 수록 유리하겠다. <<공간의 미래>> 서평 역시 미니멀로 마칠 줄이야. 하하

 

 

남기고 싶은 문장들

기능에 따라 공간과 가구를 나누는 것은 근대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현대 사회는 기능에 따라 물건이 나누어지기보다는 합쳐지는 추세다.   - 4도3촌과 가구의 재구성
나무를 키워서 건축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소극적 자세가 아닌, 문제의 원인이 되는 대기중의 탄소를 없애는 일이다.   - 포스트 코로나 아파트의 5원칙 중
이를 성공하지 못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인을 양산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누군가에세 조종되기 쉬운 대중으로 구성된 사회이거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세상이 되기 쉽다.
벼농사에는 집단노동이 많다. 집단 노동이 많다보니 집단 우선주의가 강하다. 반면 밀 농사는 혼자 씨를 뿌리면서 농사짓는다. 개인 노동이 주를 이루어서 밀 농사 문화권은 개인주의가 발달해 있다.   - 우리나라 직장에 회식이 많은 이유
인간은 언제나 불안한 세상에서 안정감을 추구하는데, 불안정한 세상에서 공간을 소유함으로써 일정 부분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다.   - 내자리는 필요하다
LH의 업무는 바뀌어야 한다. 지난 50년간 녹지를 택지로 만드는 일을 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택지를 녹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 LH의 새로운 임무
인류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계층이 만들어지고 공간이 구분됐는데, 전염병은 기존에도 있던 이러한 공간의 계층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전염병의 경우에 다른 점이 있다면 부자들의 공간은 더 커지고 밀도는 더 낮아지는 추세로 갈 것이고 그만큼 나머지 사람들의 공간은 더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 부자의 공간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의존이 없고 인터넷 공간이 필요 없다.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 전염병이 만드는 공간 양극화
점점 더 많은 국민이 국가 소유의 임대 주택에 살게 되는 것은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정치가에게 넘겨주는 일이다. … 우리는 악당을 잡으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믿지만 실제로 세상에는 악당과 그 악당을 손가락질하면서 그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위선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정부와 대자본가만 지주가 되는 세상
트위터로 소통과 정치를 해오던 트럼프는 SNS 공간을 통한 정치권력 시스템에서 차단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과거에 종교 지도자, 교육자, 정치가가 가지고 있던 건축 공간을 이용해서 권력을 만들었다면, 이 시대에는 인터넷 가상공간을 장악한 IT 기업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비대면 사회가 될수록 공간을 통한 권력이 IT 기업으로 집중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독재 시대가 시작되었다.   - 새로운 뼈대가 필요한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