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산다
이 책을 이렇게 만나게 됐죠
벌써 몇년 전인가...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이 생겨 여기 저기 정보를 찾던 때 누군가 내게 ‘미니멀 라이프’ 카페를 추천해줬다. 그 카페는 방장 역시 <<버릴수록 행복해졌다>>라는 책을 낸 분이고, 종종 알람을 설정하고 읽고 싶을 정도의 미니멀 라이프 고수들의 글들이 올라와 물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들어가 도움을 받는 기특한 커뮤니티다.
그 곳에서 추천하는 인생책들이 몇 권 있는데, 바로 이 책 <<심플하게 산다>>가 물건 들이기에는 숙고에 숙고를 마다 않는 사람들이 도서관 대출을 반복하다 기어이 한 권 소장하게 되었다는 대표적인 미니멀 라이프 입문서 겸 바이블.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을 함께 읽고, 정리 뽐뿌 제대로 받았던 독서모임 분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추천해 읽게 된 책이다.
오오~ 이 책 뭔가 있어요
그나마도 몇년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앞부분의 물건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에는 ‘뭐 이 정도의 내용에 바이블의 경지라고들 했을까? 나 미니멀 라이프 진도 좀 제법 뺐나 봐...’라며 내 안의 코끼리가 나댔지만, <몸 마음> 편을 읽어가면서부터는 왜 이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그리 많았는지 이해가 되었고, 반복해 읽게 되었다.
책은 집을 포함한 물건, 몸, 그리고 마음에 대한 작가의 긴 시간에 거친 깊은 사색들을 놓치지 않고 모아둔 글들을 엮어 그야말로 문체 자체도! 심플하게 썼다. 처음 읽을 때는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하는 짤막짤막한 문체가 너무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책 중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의 단호한 어투에 더 신뢰가 간다. 독자 모두의 입맛에 맞는 문체로 어르며 달래듯 쓰기 보다는 정공법을 택한 고수 같달까.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 인생 40여년 동안 그리 사다나르고, 갖다 버리고를 무한 반복하고, 돈, 시간, 에너지를 허비해보고 난 후에야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스타일이나 취향이 무엇인지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지나간 시간과 생각없이 써버린 돈을 포함한 에너지를 생각하면야 무척 속 쓰리지만 그래도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확실한 깨달음을 남겨주었고, 미련 따위 하나 없이 앞으로 갈 길을 확실히 보여주니 그 모든 것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위안한다. 보지 않고 믿는 자 복되다 ㅜ.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본능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면
스타일은 더 우아해지고,
집은 더 안락해지고,
수첩에는 여백이 더 많아진다.
상식이 되살아나고 인생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긴다.
사라져 없어져 버릴 물건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강조한 것은 죽음을 상시 곁에 두었던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나의 내면의 힘을 믿고 꿈꾸는 일을 이루라는 메세지는 <<도티의 마술가게>>를, 그리고 주변 환경을 이루고 있는 물건들로부터의 무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영향력과 청소와 같은 일상의 일들을 수행의 그것처럼 의식화하라는 내용은 <<프레임>>의 핵심 메시지를 그대로 갖다 붙인 것만 같았다.
건축가와 인류학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한 개인의 정신을 찍어 내는 게 바로 집이며, 인간은 자신이 사는 장소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환경은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장소를 보면 그 사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선불교에서는 청소를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방을 정돈하는 것은 곧 세상을 깨끗이 하는 것을 뜻한다. … 청소는 품위 없는 노동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되찾는 활동이다. … 잘 정돈된 공간은 우리가 적어도 우주의 작은 한 모퉁이에 질서를 부여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영혼에는 일상 생활에서의 아름다움이 필수 요소였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배웠다. 나의 몸 상태나 주위 환경에서 불쾌를 느끼면 보상심리로 먹거나 물건을 사게 된다는 메카니즘. 작가는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세부적인 것들이 아주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부적인 것이 완벽할 때 우리는 더 안정감을 느끼고 더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미니멀리즘에는 반드시 아름다움이 포함된다.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러한 행동은 우리에게 에너지와 기쁨을 준다. 우리 몸에 공기와 물과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영혼에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 물건을 적게 소유하면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미니멀리즘은 바람직한 삶의 본보기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이며, 원하는 결과에 가능한 한 우아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이르는 과정이다.
진정으로 고급스러운 생활은 아름답고 질 좋은 물건을 별로 의식하기 않고 당연한 듯이 곁에 두고 사는 것이다.
작가 도미니크 로로는요
작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유럽, 남미를 두루 거쳐 일본의 정제된 미학에 매료되어 정착하여 살고 있는 수필가이다. 그녀는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의 생활은 나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했고,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나름 길다면 길었던 이민 생활을 해봤던 나는 작가의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찰떡같이 이해된다. 이민 생활 동안 나를 위축시키기도 했지만 자기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했던, 양날의 검과 같았던 '자기 검열'. 내 나라에서 살았다면 당연하기에 두 번 이상 복기해보지 않았을 나의 행동이나 말이 그 문화에서는 타당한 것인지 상시 나를 뒤돌아 봤던 기억. 같은 경험을 했던 작가가 쓴 글을 읽는 동안 많이 설레었다. 어쩌면 그녀가 이룬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나도 나의 버전으로 이뤄가는 과정인 것 같다는 희망.
나의 작은 철학책
소로우의 <<월든>>이 본인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아름다운 실험기록이라면,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는 실용서를 부록으로 장착한, 작은 철학서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명상록>> <<도티의 마술가게>>와 <<프레임>>이 몇번이나 생각났던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다시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의 깊은 사색을 통한 지혜를 감사하게도 한 나절만에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명한다면 말이다.
아무것에도 종속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스스로를 다스리면 당신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훨씬 더 낙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잘 살기 위한 최고의 비결은 바로 포기를 하고 초연함을 얻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무한한 세상과 소통해야만 심플한 삶에 이를 수 있다. 겸손과 연민을 실천하기 위해 꼭 종교적인 공동체에 소속될 필요는 없다. 삶과는 상관없이 형식만 남은 종교는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겸손과 연민, 정직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사는 방식에서부터 시작된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며칠 앞두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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