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가난이 디폴트인 시대에 개인의 우아함은 지켜질 수 있는가 <<우아한 가난의 시대 - 김지선>>

소라언냐 2023. 9. 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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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가난의 시대

 

 

정말로 생존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없는 극빈의 상황만을 가난이라고 한다면 ‘우아한 가난'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형용모순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들은 상대적이고 만성적인 ‘빈곤감'에 시달린다. 씻어 낼 수 없는 불안이 함께 하는 이 사회에서 빈곤감은 언제나 늘 우리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우아한 가난’은 그런 빈곤감이 디폴트인 사화에서 한 개인이 의연하게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어다. 동시에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기준으로 삶을 정의한 사람이 빈곤감에 허덕이지 않고 보다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택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삶의 양식을 가져야 하는 시간이다.

 

도서관에서 설렁설렁 이책저책 꺼내보다가 읽게 된 <<우아한 가난의 시대>>.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도 이 책은 왠지 다 읽고 싶어졌다. 심지어 재독을 했고 남편에게도 권했다. 독서모임을 통해 읽고 있던 <<태백산맥>>을 읽을 시간도 쪼였는데도 말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읽었으니 삼독이다. 이 책... 뭐지? ㅎㅎㅎ 

 

돈이 없다 없다 노래를 하면서도 샤퀴테리 바에 가서 먹고, 특정 디저트를 사기 위해 멀리까지 가고, 식기세척기 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작가. 택시를 타본 적이 손에 꼽는다는 엄마와 서울에 살면서 어떻게 택시를 타지 않을 수가 있냐며 놀라는 그녀.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부자같이' 사는 법을 터득하고 즐기는 그들은 김사과 작가의 말처럼 ‘호텔의 일회용 샴푸같이'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원래 부자인 것처럼’은 될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글로 털어놓는 작가의 이야기에 웃음이 났다. ‘이거 우리 얘긴데?’ 하고. 철모르던 시절의 나와 남편의 모습이 겹쳐서. 허나 우리는 그렇게 노냥 불안하면서도 살던 관성대로 살고 또 상시 불안했다면 ‘나보다도 한참 어린’ 84년 생인 김지선 작가는 본인들이 느끼는 불안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분석했다는 것이 우리와 달라기에 그렇게 이 책이 별스러웠을까? 

 

 

30대였던 우리와 많이 닮은 듯 보였지만 많이 달랐던 젊은 그들 부부는 현실을 객관화했다. 우리처럼 그래도, 어쩌면, 어쩌면… 호오옥~시 이 상황이 나아질지도 몰라하는 한가닥의 희망회로를 돌리지 않고 단언했다. 이제 내리막만 있을 뿐이야.

 

현실 파악을 냉정히 끝낸 이들은 이제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나를 보호하면서 살 수 있을까를 모색한다. 어떻게 하면 가난한 시대를 우아하게 살 수 있을까? 솔직히 서문의 글처럼 지금 끼니를 걱정하는 극빈한 상황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마다 나름의 일정한 노동수익이 있으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못해 걱정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적이고 만성적인' 빈곤감. 노동수익이 끊기는 순간 얼마 버틸 재간이 없을 것 같은 그 채울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좀먹지 않도록 우아하고 품위를 지키고 살겠다는 외침. 

 

 

앞부분의 내용들은 작가가 자기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갖추기 전에 휘둘리면서 전전긍긍하는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었다면 뒷부분부터는 나름 단단해진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기회비용과 시발비용을 날렸기에 이렇게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나 역시 지금의 나름 만족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을 갖게 되기까지 쓴 돈이며 시간이 다 얼만가.

 

하퍼스 바자 잡지의 에디터로 근무하면서 인터뷰했다는 백상현 박사의 말이 와닿았다. 

<<고독의 매뉴얼>>을 쓴 철학자 백상현은 이러한 순간들을 ‘유령이 찾아 온 시간'으로 명명하며, 잠시 열렸다가 금세 닫히는 자각의 시간을 놓치지 말고 탐험하라고 말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잠시 균열되는 순간을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고독은 이러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기초체력 훈련과정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떨어져나와 자발적 고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유령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말이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예요. 어떻게 소외되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당장 오늘 아침을 어떨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 월셋방에 홀로 앉아있는 젊은이들은 도데체 어떤 사건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했죠. 이에 대한 결론은 사건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마음만 열면 그 사건과 마주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N포 세대가 암울한 현실만을 가리키는 말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좋다고 말하는 것들을 포기했을 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돼요. 그렇다면 더이상 포기가 아닌 저항이 되는 거죠. 예를 들면 패스트푸드는 맛있잖아요. 근데 아무도 그걸 언제부터 맛있어했는지 질문해보지는 않죠. 그게 초월적으로 맛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길들여진 것일까? 물론 입맛을 바꾸기는 무척 어려워요. 그러나 그 입맛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가 없죠. 행복이란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결혼, 자식, 큰 아파트, 큰 차에 대한 쾌락은 우리가 길들여졌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닐까? 거리를 두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일단 고독해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허허 이 사람 용자일세.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는 역설적으로 사회가 해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해도 크게 욕먹지 않을 세대이므로 자유롭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말을 입밖으로 내는 순간 N포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의 돌이 날아올 것만 같다. 이를 입 밖으로 낸 백상현은 용감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본인들의 자유로움을 자각한 사람은 자발적이고 주도적이므로 더 이상 소외되지 않는다. 더 우아하게 저항하고 있으므로.   

이 책에 그렇게 꽂혔던 이유를 찾았다. 까뮈의 <<시지프 신화>>의 그것이었다! 저항하는 인간. 그렇게 힘들게 돌을 굴려 산 꼭대기에 올려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다시 굴러 떨어져 내려가는 돌. 자본주의에 태어나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놓여질 수 밖에 없는 경쟁의 무의미. 낙오하지 않기 위해 주위의 채찍질을 견뎌내며 눈 먼 경쟁에서 다만 앞서기 위해 이 악물고 뛸 것인가 아니면 잠깐 멈춰 왜 뛰는지, 왜 일을 더 잘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볼 것인가.

 

목표를 성취한 후의 행복인가 지금의 소확행인가? 작가의 세대 MZ들은 우리보다 더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태어나보니 이미 만만치 않은 세상에 왔다는 것을 줄곧 체감해왔으므로. 더 좋아지는 시절은 경험해본 바가 없으므로.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지키는 감각을 이미 장착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악착같이 퇴근 이후 나의 저녁 시간은 지켜낸다는 각오. 내게 물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내 공간을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의지. 그것은 ‘사막을 다녀온 사람'의 인터뷰처럼 최후의 낭만과 현실을 챙기는 삶이다. 그리하여 다시 경쟁에 나설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므로. 현재를 우아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어야 그 넘에 경쟁이란 것도 잘 할 수 있으므로.

 

 

가난이 디폴트인 시대에 개인의 우아함은 지켜질 수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그렇다라고 느껴진다. 작가의 말대로 일종의 점조직 같은 연대감을 느꼈달까. 김지선 작가의 에세이도 좋지만 더 공감이 되고 좋았던 것은 역시 나와 같은 X세대의 오찬호가 쓴 ‘살얼음판 위에서라도 스케이트를 타겠노라’ 라는 글이었다. 

그렇다면 얼음판을 벗어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고, 스케이트를 타는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모습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얼음에 금이 나더라도 그건 자기 책임이 아니니, 괜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청춘들은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을 이롭게 하는 기존의 시스템에 동조할 수 없음을 천명했다. 시키는 대로 해도 달라질 것은 없기에, 이들은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가난다움’이라는 프레임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 우주여행을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스케이트 타는 걸 그토록 신중히 고민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부여될 리 만무하다. 이들은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뺏긴 자유를 찾고자 투쟁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얼음이 두꺼워야 한다. 그런 사회를 모두가 희망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회 분위기가 더욱 두터워져야 한다. 작가의 말대로 가난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불안한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낙관보다는 비관이 편리하겠지만 상시 거리를 두고 관찰자로 살아가자. 나의 정체성은 여행자이며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만 놓치지 말자. 나는 이미 자유롭고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