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유연한 삶의 자세 <<최소한의 밥벌이 - 곤도 고타로>>

소라언냐 2024. 2. 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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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밥벌이

지속가능한 밥벌이를 위한 벼농사x글쓰기 프로젝트

 

책 표지가 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작가 하완이 그린 그림이란다. 돗자리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발로 벼를 심는, 알로하 셔츠를 입은 아저씨. ‘이렇게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라며... 곤도 기자를 그린 것일테다. ㅎㅎㅎ

 

큰 줄거리는 50 평생을 대도시에서 살아온 기자가 ‘더는 회사와 사회에 휘둘리는 삶을 살기 싫다. 내가 원하는 글만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 최소한 밥만 굶지 않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벼농사를 직접 지어보자!’라며 회사에 지방 발령 신청을 낸다.

 

비장미 터지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글쟁이’로 살기 위해 호기롭게 얼터너티브 농부가 되겠다며 자신보다 나이 어린 부장에게 지방 발령을 요청하는데, 어이없이(?) 일사천리로 발령이 진행된다. 지도에서 보자면 한국에 더 가까워보이는 나가사키 현의 이사하야 지방으로.

  

 

전업 농부 말고 얼터너티브 농부요

책을 읽는 내내 곤도는 농사를 열심히 지어 생계를 이어가는 농부들에게는 좀 죄송한 얘기지만, 자신은 농부로 살려는게 아니며, 농사를 짓는 건 글쟁이로 살기 위해 딱 자기 먹을 것만 얻기 위한 ‘식량 조달 작전'에 불과하다고 심각하게 강변한다. 자신은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장점만 따먹으려는, 아주 진지한 ‘글쟁이'라며. 이 아저씨 웃기네. ㅎㅎ

 

스스로가 세운 규칙도 단호하기 짝이 없다. 무조건 아침 한 시간만 농사짓고 오후에는 ‘본업’인 글을 쓴다가 철칙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냥 농부가 아니라 얼터너티브 농부란 말이다. 또한 미학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어서 논에서도 본인의 시그니쳐 룩인 알로하 꽃무늬 셔츠 스타일은 포기할 수 없다. 지방일수록 보수적일 수 있으니 취재시 경차를 타면 호의적일 거라는 회사 측의 조언에 굳이 논두렁을 누빌 중고 포르쉐를 장만하는 곤조를 보여준다.

 

 

초짜 농부의 막장 농사에 열광하다

여차저차 와본 적도 없는 이사하야에 도착한 곤도. 밤이 되면 문 여는 술집조차 없는 환경에 절망하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회사에 뱉어 놓은 말을 수습하려면 어떻게든 일인분의 쌀을 수확할 수 있는 땅을 빌려야 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어찌저찌 버려져있던 땅도 공짜로 얻고, 농사의 달인을 스승님으로 모시며 한뼘 벼 농사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잡초를 베고, 땅을 일구고, 해충들과 씨름하고, 땀을 흘려가며 각종 소형 농기구들을 다루는 법을 스승님께 야단 맞아가며 익혀간다. 

 

물 줄기를 독차지 한 마을 아버님과의 일화는 정말 내가 농사짓는 마음이 되어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기를 바라게 되고, 냉해와 태풍에는 내 마음이 타들어갔고, 보니와의 썸(?)에는 내가 다 설레며, 포르쉐가 논바닥에 꽂히는 장면에서는 현웃이 터졌다. 아 놔... 이 아저씨 웃길라고 갔는가봐. 

 

책을 읽는 나만 이렇게 곤도를 응원한 것이 아니었던가보다. 이 초짜 농부의 벼농사 도전기는 아사히 신문에 연재됐었다는데, 뭔가 색다른 뉴스에 목말랐던 독자들은 이 얼렁뚱땅 농사 얘기에 열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웃기기만 한 글이었다면 웃고 치웠을 터. 곤도는 끊임없이 자신이 농사짓는 이유,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성, 세계적 질서의 위험, 등의 이슈들에 대해 정색하고 자신의 주장을 이어간다. 일년간 농사를 짓는 동안 농약 사용에 대한 의견, 공동체 생활의 요령, 아무도 물려받지 않는 농사라는 업, 지방의 소멸, ... 결국에는 이 무자비한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 하지만 그마저도 친숙한 동네 아저씨의 하소연처럼 들리는 함정이라니. 무거운 주제들을 유연하게 다루는, 작가의 단단한 필력을 느낄 수 있다. 

 

 

곤도의 프로젝트 성공에 더불어 행복한 이유

어쨌든 이 웃기는 초짜 얼터너티브 농부 아저씨의 밥벌이 프로젝트는 성인 1인의 일년치 쌀 소비량인 65kg을 훨씬 웃도는 87kg을 수확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초짜가 땅을 일구고, 바보가 써레질을 하고, 얼간이가 모내기를 했어도 지어도 벼는 자란다’며...

 

책을 마치고 곤도의 쌀농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에 안도했고 행복했다. 그건 그가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농사를 마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기에 우리도 한시간만 농사를 지으면 나머지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어서만도 아니었다. 

 

뭐였을까? 고도로 발전한 듯 보이지만 사실 들여다 보면 빤한, 자본주의라는 착취 시스템의 한계가 보이는 세상에서도 개인의 삶을 즐겁게 사는 방법을 보여줬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데, 그런 하루하루가 이제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갈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본업인 글쓰기에도 탄력이 붙었다. 이런 시골에 와 있는데도 작년보다 편집자들의 원고 청탁이 늘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틀림없이 내가 즐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활기 있게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게 보이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런 소리를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반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실제로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살아내고 있는 그런 롤모델이 필요하다.

 

 

딱 혼자 먹을 일인분의 쌀만 경작하겠다던 곤도는 옆 밭에서 채소들을 가꾸는 보니와 친해지면서 당장 전략을 수정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멧돼지 수렵 자격증도 취득했다는 근황을 전한다. 마을의 골칫거리도 해결하고 때때로 반찬거리(?)도 해결한다며. 이젠 농사도 요령이 생겨 하루 한 시간도 안지어도 되겠어서 남는 시간에 낚시를 하면 되겠다며... 이런 유연함이라니 ㅎㅎ 무엇보다도 그가 계속 이사하야에서 지내고 있다는 근황이 반갑다.

그런데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깨달은 것은 1인분을 재배하나 2인분을 재배하나 벼농사 작업량은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보니 몫까지 재배해주고 대신 채소를 받을까? 증여경제의 탄생이다. 

 

 

책의 후반부에 곤도는 다수의 사람들이 얼터너티브 농부가 트렌드가 되었을 경우를 상상하며 예상 가능한 서늘한 시나리오를 전한다. 짜증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다. 작가가 예를 들어준 영국 산업 혁명기의 Enclosure 운동* 등의 역사가 증명하니. 

만약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세상에 괴짜가 늘어나고 나처럼 별 볼 일 없는 얼터너티브 농부가 전국에 수십만 규모로 생겨난다면 어떻게 될까.

글로벌한 대자본은 반드시 얼터너티브 농부를 망치러 올 것이다. 자본은 자기들 명령을 잘 따르는 충실한 개(국가)에게 캉캉 짖고 겁을 줘서 모두 달아나게 만들라고 할 게 분명하다. ‘소규모 농업의 유행은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방해한다' ‘농업의 글로벌화에 장애가 된다'는 식의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왜일까. 풍족하진 않더라도 시골에서 나름 먹고 살만한, 느긋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면 글로벌 대자본에 곤란한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일본 같은 이른바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이토록 멋대로 날뛰는 까닭은 ‘굶주림이라는 공포를 이용한 지배'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빈곤층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주며 ‘낮은 급여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일할 곳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블랙기업이라도 정규직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불평말고 일하라. 달리 먹고 살 방법이 없지 않은가, 라며 도시 노동자들을 세뇌한다.

 

 

@순천시 별량면의 시골마을

수용과 유연함

<나는 자연인이다> 등의 다큐들을 보면 시골로 내려가 산다라고 하면 주로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등등. 이것도 자본주의의 프레임이었음을 최근에사 깨달았다. 뭔가를 크게 버리고, 비우고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삶이라는 프레임. 뭘 그렇게 내려놓고 포기해야 한다는 걸까.

 

어쩌면 삶이란 작가가 <<최소한의 밥벌이>>에서 전해주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어쩌면 이 길이 맞는지도 몰라’하고 들었던 길에서 뜻하지 않았던 시련들을 맞닥뜨리더라도 수용하고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때마다 유연하게 방향을 바꿔 적응해가는 것. 내 선택이었으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선택이 그렇게 어려울까. 닥친 일이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질까. 

 

지금껏 살아온 경험이 말해준다. 꽃길만 있는 삶은 없다. 역으로 자연으로 돌아가 조화롭게 산다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인간으로서는 커다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선명하다면 일의 우선 순위는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저기요, 논농사는 안지을라고요 ㅎㅎ

곤도의 지속가능한 밥벌이를 응원하며 책을 마쳤다. 시골로 가서 우리만의 스타일로 작은 집을 짓고, 우리가 먹을 야채 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하며 살 계획인 내 손에 잡힌 반가웠던 책. 지금까지 읽었던 귀농귀촌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리틀 포레스트>처럼 낭만적이거나 팍팍한 농촌의 일상을 알려주려는 책들이 많았는데, 코드 맞는 친구의 글을 훔쳐 읽은 양 유쾌하고 즐거웠다. 

 

함께 읽었던 남편과 깔끔하게 결론도 냈다. 우린 밭농사지 논농사는 안짓는 걸로 ㅋㅋㅋ

 

 

영국의 엔클로저 운동
16세기 영국에서 엔클로저(enclosure) 운동이 있었다. 엔클로저 이전에는 영국의 지방 농민에게 커먼즈(commons)라고 하는 공유지가 있었다. 그 땅에서 땔감을 얻기도 하고 가축에게 풀을 먹이기도 했다. 이 땅은 지주가 쓰는 땅이 아니기 때문에 농민들이 마음대로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이런 일종의 관습이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공장제 자본주의로 바뀌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영국이 ‘세계 공장'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여했을까? 물론 산업혁명을 통해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된 대규모 공장이다. 큰 공장을 세우기 위한 거액의 자금도 필요했다. 그래서 금융 자본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 도시에 살며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 될 수 있으면 값싸고 긴 시간 부려먹을 수 있는. 때론 어린이에게도 위험한 일을 시켰다. 그런 써먹기 편리한 노동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편리한 노동자는 자본이나 국가 형편에 맞게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만들어내야만 했다. 지방에서 자유롭게 나름대로 풍족하게 살고 있다면 아무도 자진해서 도시로 가 불결하고 좁은 공간에 쳐박혀 긴 시간 공장에 묶여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달리 길이 없다, 즉 ‘굶어 죽을지도 모를 빈곤에 대한 공포', ‘굶주릴지 모른다는 공포를 이용한 지배'가 없으면 아무도 도시에 나가 공장 노동자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를 만들어냈다. 자본에 기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지방 농민을 자급자족 경제에서 잘라낸 것이다. 엔클로저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 곤도 고타로 님을 소개합니다

32년차 아사히신문 기자 

아침에는 농사짓고 오후에는 글 쓰는 얼터너티브 농부

시골에선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었던 도시 남자

혼자 일하고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자동차는 싫어하지만 포르쉐를 샀다

기골은 장대하지만 벌레는 너무 무섭다

얼터너티브 룩을 좋아하고

시덥잖은 자기 유머에 웃어주는 여자를 좋아한다

‘글쟁이'로 사는 것을 숙명으로 여긴다

 

1963년 도쿄 시부야 출생. 1987년 아사히신문사 입사, <AERA> 편집부, 뉴욕 지국, 문화부 등을 거쳐 현재 편집위원 겸 이사하야(나가사키 현) 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성장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줄거리만으로 인생의 의미를 모두 알 수 있는 세계의 고전 13>> <<미국이 모르는 미국>> <<리얼 록>>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게게게 아가씨, 레레레 아가씨, 라라라 아가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