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우리 조금씩만 더 가난해지면 어떨까 <<디컨슈머 - J.B. 매키넌>>

소라언냐 2024. 3. 7. 16:10
반응형

디컨슈머 (Deconsumer)

by J.B. 매키넌, 김하연 옮김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온다

<<디컨슈머>>는 만약 우리가 지구의 자원을 훤씬 더 적게 소비한다면 경제, 소비문화, 환경문제 등을 비롯해 우리 자신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탐구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매키넌은 경제학, 인류학, 기후과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소비를 멈출 수 있는지, 그리고 소비주의를 탈피한 삶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준다. ‘소비를 멈춘 세상'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이른 곳은 더 나은 삶, 풍족한 관계다.



주콴시의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의 숨은 의미

프롤로그에서 남아프리가 나미비아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부족의 생활상을 소개한다. 1964년 Richard B. Lee라는 캐나다 인류학자가 1년 넘게 주콴시(부족의 언어로 진실한 사람이란 뜻) 부족의 생활을 연구했다. 

 

초기에 도착했을 때 인류학자들은 이들의 수렵과 채집 생활을 생존하기 위한 필사적 투쟁이며, 현대 인류보다는 야생동물에 더 가까운 발달단계로 이해했다. 

 

그러나 리의 연구 결과는 수렵 채집인의 생활방식이 실은 좋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어떤 기준에서는 이들의 삶이 선진국의 삶보다 더 나을 지도 몰랐다.

 

우선 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먹을 것을 구하고, 요리하고, 장작을 모으는 등의 집안일에 일주일에 평균 30시간 정도를 썼다고. 게다가 주콴시의 노인들이나 20세 미만인 사람들은 대개 수렵이나 채집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였던 미국 사람들은 일주일 평균 31시간을 직장에서 보냈고, 퇴근한 후에는 집안일에 22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주콴시는 자신들의 체구와 활동수준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먹어 영양상태가 양호했다. 리가 왜 농사를 시작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 세상에 몽곤고나무 열매가 이렇게 많은데 왜 더 심어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고.

 

리가 시카고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주콴시에 대해 발표하자 또다른 인류학자인 마셜 살린스는 “생각해보면 이 사회야말로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였다”라고 반응했다. 

인간이 모두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경로가 있는 듯 보였다. 하나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적게 원하는 것이었다. 살린스는 주콴시를 포함한 수렵 채집 문화가 ‘부유함이 없는 풍요', 즉 필요가 적고 얼마 없는 필요도 주변 환경에서 쉽게 충족할 수 있는 생활방식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나는 적은 것만을 원함으로써 부유해진다'라고 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주콴시의 선례를 따른 것이다)
수렵인이 먹을거리와 그 밖의 다른 물질을 바로 구할 수 있는 양 이상으로 축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살린스는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의 숨은 의미'를 고민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자제력이, 끊임없이 더 많은 돈과 소유물을 좇는 것보다 더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지 물었다.



<<디컨슈머>> 목차

소비에 대한 사고실험

작가의 주장대로 우리 모두 현재 소비량의 25%를 극단적으로 줄인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환경과 경제에 오랜 관심을 가져왔던 학자의 사고 실험이 이 책의 내용이다. 

 

우리에게 안식일과 사유를 빼앗아간 소비. 사고 사고 또 사는 것인 시민의 의무인 시대. 그리고 그러한 소비의 결과로 넘쳐나는 쓰레기. 이제는 우리의 반려동물들도 제 몫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지금, 현재처럼 소비하는데에는 우리의 지구와 똑같은 행성이 세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미국이 소비하는 평균으로 보자면 여섯 개가 필요한 셈이고. 

 

소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소비라는 행위 자체가 그 무엇이 됐든 탄소를 발생시키므로 환경과 직결돼있다는 점이다. 이 관계는 너무나 견고해서, 기후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들 둘 중 하나의 지표의 성장을 다른 지표의 성장으로 이해해 왔다고 한다. 유행이 가속화되면 기후위기도 심각해진다.

 

눈 감은 채 질주하는 양 성장만을 외치며 질주했던 경제와 이를 뒷바침했던 소비에 일침을 가했던 COVID-19. 작가는 우연찮게 그 기간동안의 소비가 자신의 사고실험이 기대했던 것처럼 약 25% 정도가 줄었었다고 말한다. 격리 기간 동안 소비도 함께 줄었고, 그로 인해 탄소 발자국도 줄어 베네치아에는 돌고래가 돌아왔고, 방글라데시는 파란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뉴스들을 접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모든 소비는 탄소발자국을 남겨요

작가는 집요하게 소비를 파헤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 소비. 소비의 딜레마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녹색소비 또는 MZ 세대의 경향이라고도 하는, 소유보다는 경험 소비 등이 착한 소비 등으로 인식되지만 그러한 소비 역시 탄소를 발생시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예로 라탄 의자를 구입하기 보다는 공방에서 만드는 경험으로 소비했다고 해보자. 나는 돈을 주고 라탄의자를 사기보다는 경험을 샀지만, 내가 지불한 그 수업료로 강사가 필요한 물건을 샀다면... 내가 경험에 소비했던 돈도 결국 탄소를 발생시킨다.   

 

소비의 폐해를 줄이고자 지금까지 우리가 취해온 방식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석유를 태우기 보다는 바람, 태양 등에서 얻은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녹색화'한 것이었다. 이 같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녹색소비, 녹색경제는 환경 오염을 줄이는데는 도움이 됐지만 소비의 양 자체를 줄이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짚는다. 

 

예로 일반 전구보다 효율이 좋은 LED 등이 개발됐을 때 조명에 사용되는 전기 소비가 효율적으로 줄어들 것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조명에 들어가는 돈이 줄은 만큼 세이브된 돈을 새조명들을 더 추가해 구입하는 데에 썼다는 것. 책에서 LED 전구의 예는 물건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짧게 만들어 수요를 만들어내는 ‘계획적 진부화'의 예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스캇 니어링의 책에서 그가 소비가 일으키는 폐해와 딜레마를 절감하고는, 전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던 독일 주식을 모두 불 살랐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싶었는데, 이제 그가 왜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나는 가지고 있는 주식을 불 살라버릴 위인은 못된다 ㅜ)



여러 목소리로 하나의 방향을 지향하는 사람들

책에서는 ‘이 옷을 사지 마세요’ 광고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와 리바이스 같은 기업부터 방글라데시에서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 납품을 하는 공장 운영자, 반소비운동가, Low-tech 라이프를 살고 있는 이들, 일본의 대를 물려 이어 받는 가업 운영자까지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각각의 인터뷰들은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한 목소리다. 성장과 소비의 딜레마를 직시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일본의 낙후된 섬, 사도에서 답을 찾다

일본의 사도. 맞다, 금광이 발견되어 섬 자체는 흥청망청 유네스코 등재를 노릴만큼 기록할만한 풍요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선에서 끌려간 우리의 조상들은 땅밑 광산에서 굶주림과 싸우며 혹사당했던 그 섬.

 

일본 역시 도쿄가 모든 인구를 빨아들인 덕분에 현재의 사도는 지방 소멸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하지만 작가는 사도섬이 예전 인간이 활발히 활동하던 과거의 시대는 쇠퇴하고 있지만, 그 곳에 결핍감은 전혀 없다고 전한다. 부자가 되기는 힘든 곳이지만, 돈은 여전히 순환, 즉 흐르고 있다고.

 

섬에는 도시생활에서 싫증난 젊은 I-터너들이 이주해오고 있다고. 기나 긴 경제 침체 기간 그리고 심각한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인들. 사도섬으로 오고 있는 I-터너들 중 일부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집을 떠나온 이주민들, 또 다른 일부는 위의 재앙들로 자신이 추구하던 생활방식이나 가치에 의문의 가지게 된 이들이라고 한다. 



“사도섬이 그 답을 제공해주었다”  

작가의 자신의 사고실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지만 사도섬이 그 답을 제공해주었다고 말한다.

사도섬이 그 답을 제공해주었다. 내가 그곳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도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더이상 현실에 순응하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하나의 체계처럼 느껴졌다. 아직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는 가장 기초적인 체계이지만, 그럼에도 체계는 체계였다.

이 체계의 핵심에 있는 경제는 우리가 소비자본주의를 통해 아는 경제보다 더 작고 더 천천히 돌아간다. 구할 수 있는 유급 노동도 더 적은데, 이는 세가지 주요한 결과로 이어진다.
가장 명백한 첫번째 결과는 대다수가 돈을 적게 벌고 물건을 적게 산다는 것이다.
첫번째와 밀접하게 연결된 두번째 결과는 안식일과 자발적인 간소함을 실천하는 이들의 삶을 연상시키는 비영리적 시간이 특이할만큼 많다는 것이다.
세번째 결과는 그중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어떤 식으로 자급하는데 쓴다는 것이다. 시골이고 땅값이 저렴한 사도섬에서 이는 곧 적어도 자기가 먹는 음식의 일부를 직접 재배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곧 자신의 즐거움을 더욱 중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도섬에서는 물건과의 관계도 다르다. 사람들은 보통 물건을 많이 소유하지 않으며, 물건은 더 오래 사용한다. 이곳에는 천을 덧댄 바지와 빛바랜 페인트, 오래된 자동차와 같은 와비사비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더 좋은 것을 더 적게 소유하는 경제다. 역시나 역설적이게도, 이곳 사람들이 소유한 물건은 그들에게는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해보인다. 그 물건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 삶의 일부가 될 지를 인식하고, 음식처럼 빨리 사라지는 것인 경우에는 그 특별한 품질을 인식한다. 사실 사도섬 주민들이 만들고 먹고 소유하는 것들은 늘 엇비슷하게 좋다. 이곳의 경제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새로운 쾌락이 아닌, 평생은 아니더라도 오랜 세월 함께하는 쾌락의 경제다.



프롤로그의 주콴시의 지혜

개인적으로 인류학자인 마셜 살린스가 주목했던 그들의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의 숨은 의미는 ‘축적하지 않는다'라는 것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이야기하듯 농업혁명이 인류에게는 일종의 사기였다고 보는 입장과 같은데, 잉여 농산물의 생산물의 축적으로부터 산업혁명과 전쟁, 그리고 현재의 이 모든 소비의 메카니즘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 자족할 수 있는 만큼의 생산. 마치 동물들처럼 배가 부르면 더이상 사냥하지 않고, 더 쌓아두지 않는 지혜를 잃은 댓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몽곤고나무 열매가 풍요롭게 있는데도 왜 더 농사 짓지 않느냐는 질문이 수긍이 됐다면, 우리는 혹시 아직도 댓가를 충분히 치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중 아닐까. 

 

우리가 생산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자원과 인간 노동을 사용한 다음 자연과 인간을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습니다. 가져왔으되 도로 돌려놓지 않은 부분 즉 외화된 부분을 생산이라고 합니다. 가치창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오염입니다.
- 신영복 <<담론>>
소비가 미덕이라는 구호도 비인간의 극치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소비는 전쟁입니다. 전쟁이야말로 미덕이 된다는 역설입니다. 지금 그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 신영복 <<담론>>



J.B. Mackinnon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신문방송학과 부교수로 환견 및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며, <뉴요커> <내셔널지오그래픽> <애틀랜틱> 등에 소비자 이슈, 생태학 문제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인간의 도시 문명, 즉 도로나 철도가 야생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탐구한 <베어71>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으며,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었다.

 

저서로는 자연 세계의 복원을 다룬 내용으로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를 수상한 <<잃어버린 야생을 찾아서>>, 로컬푸드 운동의 기폭제가 된 <<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공저), 전 세계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여기 산다>>(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