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일상

플렉시테리안(Flexiterian)의 탄생

소라언냐 2024. 5. 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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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베지테리언 식단에 따른 구분

 
 
예전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비건(vegan)과 베지테리언(vegeterian)만 있는 줄 알았다. 누가 더 엄격한 채식을 하는가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채식을 하는 지인들이 점점 늘고 나도 식사를 준비하는 식재료들이 점점 바뀌면서 궁금해졌다.
 
식재료에 알러지가 있다던지 하는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신념 때문에 매끼니의 식사 때마다 자신의 뜻과 어긋남이 없는 식재료를 선택하고 먹는 그 의지가 대단하다 생각되었으므로. 하지만 내심 어딘가 뾰족하고 타협이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선입견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책들이나 다큐들을 찾아보면서 궁극적으로는 채식을 하는 것이 나에게도, 동물들에게도, 지구 환경에도 부담을 더는 것이라는 이해와 확신이 생겼다.
 
 

나도 베지테리언일까?

육류는 되도록 먹지 않으려고 한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소화력이 떨어진 것을 느끼기도 하고... 모르겠다. 예전보다는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그냥, 부지불식간에 확 줄어버렸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사육되고, 도축되고, 손질되어, 마켓 진열대에 오르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어서 더욱 그러하겠다.
 
대신 생선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하는데, 고기를 줄여야겠다는 이유가 왜 생선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지 내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 영화를 본 이후 그들도 인지 능력이 있고 감정이 있는,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도 그 문어와 진열대의 데쳐진 문어는 같지 않다고 애써 부인하며 장바구니에 담는 나.
 
식사에 초대 받아 간 집의 주인이 성의껏 준비한 음식은 주로 육식이 메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자리에서 '저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라고 말하기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니가 언제부터...' 갑자기 쎄~해지는 분위기를 감당할 자신도 없을 뿐더러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내겐 아주 중요한 이유인데 먹는데 까탈스런 사람으로 찍히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런 나도 베지테리언이 될 수 있을까?
 
 

니체는 '신념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라고 했지

고민을 계속하다 보면 화딱지가 난다. 그깟 신념이 뭐라고 먹는 것에 이렇게 고민을 하고 집착을 하냔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어쩌라고. 동물복지가 문제라면, 반려식물도 키우면서 식물복지는 어때? 왜 식재료를 어디까지 먹는가를 세세히 구분해 스스로 피곤하게 사느냔 말이다.
 
그래, 열린 마음으로 모든 주어진 음식에 감사하고 먹는거야. 포시랍게 먹을게 풍요롭다보니 이런 고민 같지 않은 고민도 하는 거지, 당장 먹을 게 없어봐. 이런 생각이 들기나 하나...
 
잠자코 속을 들여다보면 내 안엔 도데체 몇명의 '나들'이 있는 건지 공격 수비 진심 흥미진진하다. 
 
 

플렉시테리언(Flexiterian)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이런 혼자만의 고민이 답답해 서치해보니 다양한 방법으로 채식 식단을 지켜서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어휘들이 있었다.
야채에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테리언, 유제품이나 달걀까지 허용하는 락토 또는 오보 베지테리언.
 
그리고! 대망의 플렉시테리언이 있었다. 
 

Flexiterian

flexible(유연한) + vegeterian(채식주의자)

 

플렉시테리언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플렉시테리언은 주로 채식주의자의 식습관을 따르지만, 필요에 따라 육류와 해산물을 가끔씩 섭취라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일주일 중에 몇일은 채식 식단을 유지하면서 나머지 일부는 육식을 하거나 해산물을 먹는다.

이러한 유연성은 건강이나 환경, 동물복지와 같은 이유로 채식을 지지하면서도 가끔씩 육식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플렉시테리언은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면서도 식습관을 관리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식생활에 대해 뭔가 정리가 되지 않아 고민했던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묘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그래 나는 플렉시테리언이로구나. 지금처럼 이렇게 먹고 있어도 엉망진창인게 아니라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구나.
 
비건이나 베지테리언이라 하면 어나더 레벨의 식단을 지키는 사람들인 것처럼 거리감이 있고, 제 아무리 유익한 식단이라 해도 따라해 볼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입문으로 플렉시테리안은 어떤가. 
 
식단에 엄격한 이슬람교인들도 고기는 할랄 미트만 먹어야 하지만 그렇게 처리된 고기를 정 구할 수 없을 때에는 그냥 먹는다고 했다. 신념도 우선은 먹고 살아있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인가. 아... 글을 마치면서도 또 속 시끄러울라 한다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