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일상

오이를 키우며 음양론을 생각하다

소라언냐 2024. 6. 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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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호박이었네

 
 
이사를 5월 말에 해서 이미 텃밭에 씨앗을 뿌려 심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텃밭 농사에 관심을 가지고 책들을 빌려보니 어지간한 야채들은 대부분 3-4월 씨 뿌리기를 해줘야 한단다.
(텃밭 농사는 글로 배워요. ㅎㅎ)
 
감사하게도 이사도 전에 집주인 내외분이 자기네 텃밭에 고추, 상추, 가지, 방울 토마토 씨 뿌릴 때 같이 뿌려뒀다고 하시더니 주인도 없는 집에서 싹이 나 잘 자라고 있었다.
텅 빈 텃밭을 보니 뭐라고 심어야 한다는 압박이 스멀스멀.
 
지금 심어도 될지 텃밭 가꾸기 카페 글들을 뒤졌더니 날이 더워도 모종을 심었다는 분의 반가운 글!
날이 뜨거워 죽는다면 또 살아남는 아이에게 양분이 될 거라는, 쿨내 나는 그분의 마음가짐을 본받아 나도 심어 보기로.
 
오일장에 가니 이번 주가 마지막일 거라며 오이랑 호박 모종을 파시는 분이 계셨다.
마을의 오일장에 가면 그 마을에 지금 심어도 되는 모종들을 파시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3주에 2천원씩 주고 사오니 마음이 바쁘다.
 
 

오이와 호박 모종 심기

인간 두더지인가.
호미 하나로 굳어진 땅을 다 뒤집고, 잡초를 뽑고, 부식토를 섞어주니 흙이 고슬고슬해졌다.
이를 유식한 말로 '떼알 구조'의 흙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흠~ 배운 사람.
 

뜻밖의 득템 :D

 
곡성군 중에서도, 내가 사는 죽곡면은 토란 생산지로 유명하다.
전국에 유통되는 토란의 70-80%가 곡성군 상품이라고.
 
빈 텃밭의 잡초를 다 맸더니...
두둥~ 심지도 않은 토란 새싹이 열 개나 올라와 있다. 앗 득템! ㅎㅎ
 
 
장에서 사온 호박과 오이 모종을 심어주고 줄을 타고 자랄 수 있게 노끈으로 지지대도 만들어 줬다.
문제는... 한꺼번에 사왔더니 뭐가 호박이고 뭐가 오이 모종인지 모르겠다는...
둘이 왜 이리 비슷하게 생긴 것임.
 
꽃이 피니 잘 자리 잡은 세개는 오이였던 걸로. 
그런데 어제 아침에 화사하게 피었던 꽃이 오늘 아침에 나가보니 똑똑 떨어져 있다.
다른 오이 가지도 마찬가지고 하나만 꽃이 계속 달려있다.
 
 

오이의 화아에는 암수 구별이 없대요

낙화가 애석하고 궁금해 찾아보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한 포기의 오이에는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고, 드물게 양성화(bisexual flower)도 같이 핀다고.
양성화는 암꽃이 될 것이 수꽃으로, 또는 수꽃이 될 것이 암꽃으로 변하여 발생한다고 한다.
 
자라서 꽃이 되는 부분을 '화아(flower bud)'라고 하는데, 오이의 화아 초기에는 암수 구별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온도, 햇빛을 받는 시간, 영양 상태 등 환경에 따라 암꽃과 수꽃으로 결정된다고.
 

즉, 오이의 꽃눈이 분화되는 것은
유전 형질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환경 조건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것

 
 

오이를 키우며 체험하는 음양론

고 강수연 배우 주연의 영화 <씨받이>의 장면이 떠오른다.
태교 장면으로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고 심호흡을 땀이 나도록 시키는 장면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수태된 태아는 아직 성별이 정해지지 않았고, 태교에 따라 아들이 되거나 딸이 되는 거라고. 
 
그렇다면 오이도, 사람도 같은 음양론이 먹히는 건가.
오이를 심어보니 음양론이 어디 달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텃밭에 있다는 깨달음.
 
 

아침마다 텃밭 명상

상추, 고추, 마디호박, 오이, 옥수수, 방울 토마토, 대파, 토란이 비올 때마다 키가 쑥쑥 크고 있어요.
덕분에 아침마다 무심하게 몸을 움직이며 두시간 텃밭 명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