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무리를 슬슬해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갔다.
서울에 올라가면 주로 나는 분당 친정에, 남편은 수유리 본가에서 각자 떨어져 원가족과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다 오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2024년 12월 3일 밤. 엄마는 잠이 오지 않는다 하셔서 TV조선에서 방영하고 있던 트롯 프로를 함께 보고 있던 중 속보가 뜨고 갑자기 윤통이 화면에 나타났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고.
비상계엄령이라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그 비상계엄령이라고?
광주 5.18의 그 비상 계엄령이라고?
비상계엄령이라는 현실감 제로의 단어가 TV 자막으로 뚜렷히 박혀있는데도 내눈을 믿을 수가 없어 MBC로 채널을 돌렸다. MBC는 정규 프로그램 편성대로인지 PD 수첩이 방영중이었고, JTBC도 그랬다.
하는 수 없이 다시 TV조선을 통해 윤통의 비상계엄령 내용을 보다가 유튜브를 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국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 라이브 방송중이었다.
국회로 모여달라고.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달라고.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다고.
남편은 자려고 준비중에 내 톡을 받은 모양이다.
잠시 후 지금 출발해서 가겠다고, 그 길로 곡성집으로 내려가자고.
엄마는 상황이 급박한 걸 모르시는 듯했다.
"엄마, 윤대통이 사고쳤어. 전두환 때 그 비상계엄령을 내린 거라고."
남편이 한 시간 정도면 올테니 집에 내려갈 짐을 싸야겠다고 하니 그제사
"아이고, 김장 김치 좀 싸자!" 하신다.
엄마랑 그 밤에 다용도실 김치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데 성남 공항에서 출발하는 듯한 헬기 소리가 무척 요란했고, 저 헬기들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더욱 심란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주무시던 아버지도 깨셨다.
엄마가 "OO아빠, 비상계엄령이래." 하시니 곧장 TV 앞으로 가셔서 방송을 보시다 왈칵 화를 내신다.
"이재명이가 해도 너무 해서 이러는거여."
아... 아부지... 지금은 할많하않이다.
남편이 도착해서 짐을 싣자마자 곡성으로 내달렸다.
뉴스 생방송을 유튜브로 들으면서.
지금 우리가 곡성으로 내려가는게 맞는지
국회로 차를 돌려 가는게 맞는지...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군인들이 막아 이재명 대표와 우원식 국회의장은 월담을 해 국회로 들어갔다고 했다.
탄핵 해제안 가결을 막기 위해 군인들이 막는다는 것을 들으니 정말 막막했다.
뉴스에서는 아직 몇명이나 국회의원들이 모였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파악이 어려웠을 듯.
갑자기 국회의원 190명인가가 모였다고 탄핵안이 올라오는 대로 투표에 부치겠다고 한다.
그러고도 한참 운전을 한 것 같은데, 아직 탄핵안을 작성중이란다.
속이 타들어 간다.
국회 내부에는 이미 군인들이 보좌관들과 대치중이고 언제 의결이 준비되고 있는 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올 지 모르는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절차에 하자 없이 진행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투표를 진행하자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다 지나고 되돌아보니 우원식 국회의장이 매우 침착하게 일처리를 잘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 긴박한 순간만큼은 안건 상정을 기다리는게 맞는지 모르겠더라.
우원식 국회의원장도 그날 국회로 오면서 고 김근태 의원이 매던 연두색 넥타이를 맸었다고 한다.
오늘 큰 일을 앞두고 잘 할 수 있도록 형님이 도와달라고...
탄핵안이 상정됐고, 투표는 신속하게 이루어져 극적으로 탄핵 해제안이 가결됐다.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그제사 놓이면서 진심 쌍욕이 나온다.
막가도 분수가 있지 비상 계엄령이라니.
국회에서 해제안이 가결됐다고 대통령실에 알리면 즉시 해제해야 한다는데
곡성에 다 와가도록 깜깜소식이다.
새벽 네시 반 경에사 짧게 비상 계엄령을 해제한다는 윤통의 담화가 있었다.
이후 나온 뉴스들을 종합해보면
윤통은 그때도 2차 계엄을 내릴 수 있었다는.
아침마다 눈뜨면 호옥시 밤새 2차 계엄이 내린 건 아닌지 뉴스부터 확인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그 주 토욜일 곡성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다시 올라갔다.
나는 곡성으로 달려 도망치듯 내려오던 그 밤, 누군가들은 국회로 달려가 지켰다.
장갑차와 무장한 군인들이, 헬기들이 집결하던 그 곳으로.
그 누군가들에 대한 부채감에라도 올라가 참여해야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 봤다.
그리고 그 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함은 내 스스로도 숙연해질 정도.
하지만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은 투표장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당론은 탄핵 부결이라 했다.
안철수, 김예지 의원이 가결에 투표했고,
김상욱 의원은 투표했으나 당론에 따라 부결에 투표했다고.
선거 때마다 그토록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왜 국회의원 그 자체가 헌법 기관이라는 분들이 당론에 따라 거수기 역할만 하는지.
당론에 따라야만 한다면 국회의원 자리 내놓고 그냥 당원하면 안될까.
여튼 1차 탄핵 투표는 부결됐다.
이제 국민의 힘은 내란의 힘이 됐고,
대통령의 어이없는 담화는 국민들의 화를 부채질했다.
2차 탄핵 투표가 있던 지난 토요일에는 광주로 갔다.
5.18 민주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집회.
전일 빌딩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었고,
1층에는 '카페, 소년이 온다'가 운영중이었다.
거리의 부스마다 음식과 핫팩, 방석 나눔이 한창이었다.
커피, 어묵탕, 술떡, 가래떡, 그리고... 주먹밥.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축하 현수막 아래 나눠지는
비상계엄령을 내린 대통 탄핵을 위해 모여드는 시민들을 격려하는 주먹밥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내란 수괴 대통의 '우리 당' 내란의 힘의 이탈표에 기대야만 한다는 것.
민주주의 시스템의 커다란 구멍을 확인시켜줬다.
그들은 마지막까지도 당리당략으로 당론을 다시 탄핵안 부결로 정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탄핵안을 상정하면서 한 연설에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글을 인용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지고 있다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방송에 회자되던 8표에 더해 추가 4표가 더해져
총 12표의 이탈표로, 총 204표의 '가'.
탄핵안이 가결됐다.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구했다.
그 밤 국회로 모였던 누군가들
탄핵 해제안을 가결하기 위해 담을 넘어서라도 군경을 뚫고 국회로 향했던 국회의원들
무장한 군인들과 대치했던 보좌관들
자신들의 출동이 북이 아닌 시민들을 향한 명령이었음을 깨닫고 망설였던 군인들.
이제 윤통 탄핵은 가결되었고,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윤통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으니 나도 끝장을 봐야겠다.
나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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