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닫힌 책으로 시작해 닫힌 책으로 끝난다 <<티벳 사자의 서 - 파드마 삼바바>>

소라언냐 2023. 8. 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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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死者의

 

파드마 삼바바가 쓰고, 에반스 웬츠가 라마 카지 다와 삼둠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번역했고, 칼 융이 리뷰를 남기고, 류시화가 한글 번역을 해 내가 읽은 책

 

 

티벳 사자의 서가 내 손에 닿기까지

- 14세기 카르마 링파에 의해 발굴

- 20세기 초 에반스 웬츠에 의해 영어로 번역, 영어 번역 도움: 라마 카지 다와 삼둠

- 20세기 말(1995년) 류시화에 의해 한국어 번역본 출간 (정신세계사)

- 21세기 작가 채사장의 추천으로 찾아보게 됨



저자 파드마 삼바바님을 소개합니다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으로 8세기 인도 우디야나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나란다 불교대학에서 전통 불교를 전수받았고, 오늘날의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스승을 따라 수행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티베트의 티송데첸 왕의 요청으로 티베트에 건너왔다. 티베트 밀교 역사상 최고의 대성취자로서 티베트 사람들은 그를 문수보살, 금강수보살, 관음보살 세 존자가 합일한 화신으로 믿고 있다. 또는 제2의 붓다라고 칭하기도 한다. 

 

파드마 삼바바는 뛰어난 비밀 교법을 여럿 남겼는데, 주로 바위틈이나 동굴 등에 숨겨놓았다. 교법을 통한 깨달음에는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그때까지 경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숨겨진 경전을 ‘복장’이라 하고, ‘테르퇸’이라 불리는 복장 전문 발굴자가 시기에 맞게 경전을 찾아내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파드마 삼바바의 경전 중 가장 잘 알려진 <<티베트 사자의 서>>는 14세기에 카르마 링파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고, 티베트 일대 국가에 전파되었다가 20세기 초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에반스 웬츠에 의해 서구 사회에 소개되었다. 이 비밀의 경전을 접한 심리학자 칼 융은 ‘가장 차원 높은 정신의 과학’이라고 극찬하며 직접 장문의 해설을 쓰기도 했다.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에 꼭 맞춰 발굴된 듯. 현란한 책 표지의 삽화와 책 내용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는, 현대의 우리에게 익숙한 문체로 작성된 칼 융의 리뷰가 '이 책 이상한(?) 책 아니야. 읽어도 돼. 괜찮아.' 라고 안심시켜 줬던 듯. ㅎㅎ  

 

완전하고 순수한 법력으로 ‘연꽃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리는 파드마 삼바바는 여전히 티베트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바르도퇴돌
죽음과 삶 사이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해탈에 이르는 법

 

책 표지의 글. 영업 오진다. ㅎㅎㅎ

호주에서 온라인으로 구해 읽으려 했으나 eBook 판매는 하지 않아 종이책 구매를 미루다가 한국에 와서 도서관에 가서 바로 찾아본 책. 당시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도서관외 대출 불가여서 빌려오지는 못했는데, 재방문시 다른 서가에 꽂혀있어 다시 문의 후 빌려온… 사연 많은 책.

 

울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을 때의 감격스러움이 생각난다. 오래동안 찾던 이를 만난 반가움이랄까? 영성 분야 책들을 읽을 때 자주 소개되어 궁금했으나 호주에서는 만날 수 없었기에 더 반가웠을까?

 

관외 대출이 불가한 책이라고 해서 앉은 자리에서 서문을 읽었다. 티벳어를 영어로 옮긴이는 옥스포드 대학의 에반스 웬츠 교수였는데, 서문이 거의 한 챕터일 정도로 무척 길었다. 그도 당연할 것이 이원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득권을 가지고 살던 본인이 이 경전의 일원론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텐가. 그러나 그는 받아들였고, 이제 글로 본인이 깨달은 바를 깨닫기 이전의 나에게 전달해야 한다!

 

 

닫힌 책으로 시작해 닫힌 책으로 끝난다

위에 정리한 것과 같이 영어 번역본이 한국어로 출판된 것은 거의 한 세기 차이가 난다. 전에 읽었던 <<조화로운 삶, 1954년 출판>>의 헬렌 니어링이 연인이었던 크리스티나무르티와 함께 신지학회 (Theosophical Society ) 활동을 했던 기록을 읽으면서 외려 기독교 국가의 사람들이 저렇게 빨리 일원론의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산업화와 세계대전을 겪은 후 기존의 가치관이 몽땅 주저앉은 폐허였기에 가능했을까? 당시에 출간된 <<데미안>>을 읽은 독자들은 또 어땠을까. <<사피엔스>>를 영국의 부모님이 읽고 보내주셔서 읽었다는 지인의 얘기... 각설하고, 말하려던 바는 영어권의 사람들이 이런 운동에 더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노출될 수 있었다는 언어적 배경이 부럽다. 나는 내가 지금 깨달은 바를 부모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그러나 <<티벳 사자의 서>>는 닫힌 책으로 시작해 닫힌 책으로 끝난다는 칼 융의 리뷰가 위안이 된다. 아무리 영어권에서 태어나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에게는 닫힌 책일 뿐이니.

 

<<티벳 사자의 서>>에서 설명하는 바르도, 즉 사후에 가게 되는 중음 단계의 죽은 이에게 ‘네가 지금 보고 경험하는 것은 모두 네가 만들어 낸 것이니 두려워 말고 빛을 따라 가라’고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내용이다.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차례로 나타나는 선신들과 악신들의 등장.

 

지금 현실도 내가 지어낸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생생한데, 사후 혼자 길을 가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나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따를 수 있을까? 그래서 살아있을 때 지금이 꿈임을, 내가 지어낸 허상임을 깨달았다면 부단히 연습하고 수행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친다. 이는 곧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래서 준비해야만 하는 좋은 죽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일테니.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경전이라고 흔히 소개되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환생의 길을 찾는 세 번째 사후세계인 ‘시드파 바르도’를 통해 지금의 삶과 죽음, 사후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이 모든 신비를 깨우칠 수 있는 기회

사람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이 모든 신비를 깨우칠 수 있는 기회이다. 채사장의 말따나 ‘동양에서 태어나 훌륭한 서양인으로 자라 이원론의 세계관을 체화한’ 내가 한 번의 깨우침으로 깨어날 수 없음을 알았던, 그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큰 지혜를 이렇게 저렇게, 직설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거듭 전해주려고 여러 책들을 남겨둔 것이 아닐까?

 

<<티벳 사자의 서>>가 그렇듯이 <<기적수업>> 역시 열린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지극한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애쓰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러운 일인 듯 남편과 이 길을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갈 수 있음도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다. 항상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왜 지구에 인간으로 와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잊지 말자.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Scott Nea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