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대범하게 삶을 살아보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소라언냐 2023. 12. 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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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Fish Don’t Exist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Lulu Miller, 정지은 옮김

 

 

작가 룰루 밀러님을 소개합니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린다는 Peabody Award를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 부친 역시 이온을 연구하는 생화학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회적 신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큰 언니와 어린 시절 집안 분위기의 기둥 역할을 하던 작은 언니, 가족 구성원의 긴장이 극에 달하면 울음을 터뜨리던 어머니와 작가로 이루어진 가족 배경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누구나 어느 때가 되면 갖게 되는 질문

나는 누구일까로 시작되는 답없는 질문은 나는 왜 태어났을까로, 그래서 내 인생의 의미가 뭔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시기를 분명 맞닥뜨리게 된다. 분명히.

 

작가 룰루 밀러는 그런 시기가 상당히 빨랐다고 생각된다.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그런 시기를 맞았었는지도. 일곱 살 즈음의 어린 룰루는 아버지와 케이프코드에서 쌍안경을 통해 습지를 관찰하다가 문득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빠,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의 의미는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 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아... 아버지... 쫌. 과학자 아버지답게 본인이 믿는 팩트를 어린 딸에게 가감없이 전한다.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로,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넌 중요하지 않아” 라는 그의 허무주의에 가까운 세계관은 역으로 그에게 쾌락주의자와도 같은 삶을 지향하도록 연료를 공급하는 것만 같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니 너 좋을대로 살아"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아버지 본인도 긴 시간 살아내었을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게 딸에게 단호히 전한다. 넌 중요하지 않으니, 그러니 활력있게, 대범하게 삶을 살아보렴. 아버지의 격려는 어린 룰루에게 그렇게 전해지지는 않았던 듯 싶다. 아니 어쩌면 그 씨앗이 심어져 싹을 틔우고 자라기까지는 룰루 자신만의 고유한 체험이라는 양분이 채워져야만 아버지 그 고유의 인생 체험이 삭혀진 진실에 통하게 되는 것 아닐까.

 

룰루는 곧잘 허무주의에 빠졌고, 안식처를 찾아 헤매였고, 권총을 생각했다. 이토록 허무한 세상에 눈을 뜨면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지진으로 무너진 자신의 콜렉션들을 앞에 두고 바늘을 들고 흔들림 없이 혼돈에 맞섰던 그 불굴의 과학자의 일생을 절박하게 좇으며 찾아내려 한다.

 

 

반전 반전 이런 반전이라니

나는 처음 읽을 때는 이 책이 데이빗 스타 조던에 대한 위인전 같은 뻔한 책인가 짐작했었다. 하지만 반전에 반전이라니! 미국 명문 스탠포드 대학의 공동 설립자였던 제인 스탠포드 사망에 유력한 살인 용의자이며, 우생학이라는 과학의 탈을 쓰고 수천명을 죽거나 불임이 되게 했던, 하지만 끝내 자신의 눈과 손으로 자신의 오류를 맞닥뜨려야 했던 사람. 

겸손을 유지하라는 수천 년 이어져 온 경고는 잊어라. 어쩌면 이것이 신이 없는 세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삶의 낙관적인 태도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나는 이 자기기만의 긍정적 착각의 효과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가 경험으로 알고 있던 바를 과학자인 작가가 짠!하고 사실이라고 밝혀준 듯 했으니.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뒤통수 제대로 맞았네.

조던의 재능 중 특히 양날을 지닌 재능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그런 다음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 그는 자신의 관용과 관대함을 자랑스러워했다. … 하지만 조던은 파리 한 마리를 잡는데 대포알을 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암시처럼 이후의 내용은 작가에게 허무를 무릅쓰고도 일어나 전진할 힘을 주는 선각자 같은 면모에서 자신의 앞길을 막을 듯한 모든 것은 내가 다 해치울 수 있다는 (살인도 감수할만큼) 자신감을 넘어, 자신의 숭고한 이상 즉 인류를 진보시키는 대의를 위한다면 내 발길에 걸리는 열등한 것들은 멸종시켜야 한다는 우생학의 열렬한 지지자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다.

지구에서 생물의 배열을 결정하는 자연선택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자마자, 그는 인류의 지배자 인종을 선별할 수 있도록 그 힘을 조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요컨대 가난, 범죄, 문맹, 정신박약, 방탕함 든 그가 혈통과 관련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특징들을 교배함으로써 말이다. 그는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살시키는 이 기술을 ‘우생학'이라고 불렀다.

 

 

작가의 글을 따라 읽던 나도 진심 궁금해진다. 별을 사랑했던 ‘숨어있는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랑했던 소년은 어디로 갔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스승 아가시와는 달리 자신이 지금까지 모든 것을 걸고 분류하고 있는 이 작업이 진화의 어느 순간의 스냅 사진임을 수용하고, 다만 신이 아니라 시간이 주체라고 인정했던 젊은 과학자는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사다리는 절대 놓지 않았다.

 

작가의 추측대로 패키니아 섬에서 스승이 심어준 계층간의 사다리가 있다는 씨앗. 그를 아무개에서 스탠포드의 총장으로, 우생학이라는 끔찍한 이론도 권위에 힘입어 강연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력자, 그리고 사랑스러운 가족을 일군 가장으로 모든 질서를 부여했던 사다리. 그 사다리를 굳건하게 해주었던 그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물고기는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그의 사다리를 그의 손으로 파괴하는 것이고, 혼돈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므로 폐어의 해부된 호흡기관을 눈 앞에 두고도 인정할 수 없었으리라. 사다리 꼭대기의 맛을 이미 보았으니.

 

 

파괴되지 않는 것

조던이 썼다는 동화책 <<독수리와 파란 꼬리 스킹크>> 이야기로 시작되는 ‘파괴되지 않는 것' 챕터는 한참 세계관이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책들로부터 얻은 깊은 인사이트에 생은 허무하다고 믿다가 나를 포함한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덧없고 허상이라는 생각, 콕 찝어 말하자면 다시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직면하면 그럴 리 없다고 집착하는 나. 조던은 틀렸지만 나의 물고기는 존재한다고 우기는 나.

 

작가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양성애자라고 밝힌다. 조던의 분류에 따르면 ‘부적합자'. 그녀는 우생학의 피해자 애나와 메리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고 마침내 그들이 그럼에도 사는 이유를 ‘민들레의 법칙'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오해하고 있던,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전하고 싶었던 관점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것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들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아버지의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맘대로 살아'라는 조언 그리고 아버지의 책상 앞의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존재한다’는 다윈의 글귀. 묘한 이중성. 룰루는 아버지가 심어준 씨앗으로부터 회의와 허무를 키웠고 경험했으며, 그 경험으로부터 역으로 우리는 중요하다는 반박을 얻는다. 자신을 성소수자, 부적합자, 숨어있는 보잘 것 없는, 개미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던 그녀였기에 내가, 우리가 서로 중요하다는 발견은 데이빗 스타 조던이 패키니아 섬에서 전율했던 그 밤의 깨달음과 같지 않았을까.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 말로 거짓이다. 그건 너무 음울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장 심한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허무주의를 반박할 자신만의 근거를 찾아 낸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변절한 선지자같은 조던과 똑같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 상기되어 또 다시 허무를 복기하는 룰루. 

하지만 여전히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우리 모두는 헤드라이트와 희망을 켠 차를 타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여전히 똑같은 텅 빈 지평선. 나는 우리의 지배자가 여전히 야멸차고 냉담하다고 생각했다. 저기 저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無라고 확신했다. 약속은 없다. 피난처도 없다. 희미한 빛도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든 상관없이. 하지만 그건 내가 아직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맞이한 진짜 결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던의 말로까지 추적한 그녀는 그가 - 그토록 신뢰하던 방법 - 폐로 호흡하는 폐어를 해부를 하던 중에 그 자신이 쌓아올린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리라 짐작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러면서 별을 포기해 우주를 얻었던 천체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빌어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얻는 것을 질문한다. 책은 큰 언니에게 질문한 답으로 마친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룰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생에 대한 관점을 가감없이 들은 후 많이 휘둘리고 방황했지만, 본인만의 경험들과 치열한 내적 갈등의 시간들을 버텨낸 이후 아버지의 세계관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책의 추천사 앞에 ‘아빠, 이 책은 아빠를 위한 책이예요.’라는 글이 있었다. 따듯한 부녀지간일세~ 하고 지나쳤던 그 문장이 사실을 책의 전부를 아우르는 글귀였음을 깨달았다. 생은 의미가 없으나 그 의미 없음에도 분연히 일어나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우리의 관계라고. 그 말은 아버지의 도덕률과 그 하나의 거짓말이었던 “다른 사람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와도 닿아있다.

 

 

대범하게 삶을 살아보렴

어류라는 것은 실제 과학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하지만 어류가 존재하던 말던 무슨 상관인가. 어류가 사실은 척추동물이라면 또 어떤가. 인간이 무슨 이름으로 그들을 분류하던지 그들은 거기에 존재한다. 그 말은 역으로 남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판단하던 상관없이 나는 나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남이사. 거칠 게 없이 내 생각대로 살아야 한다. 돌고 돌아 또 니체가 뿅. 하하

 

룰루 아버지의 생에 대한 태도에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의 생이 무상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머리로 익히 알고 있으나 살아 숨쉬는, 이렇게나 똑똑히 만져지는 세상을, 내 소중한 사람들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독수리에게 잘린 꼬리를 자라게 하려고 독수리 알을 먹어 꼬리를 다시 만들고 또다시 먹히는 파란 꼬리의 스킹크와 같이, 중요하지 않다는 아버지와 중요하다는 룰루와 같이 우리 삶은 끝없는 윤회이겠지만, 다윈이 말한 ‘어떤 장엄함’을 순간순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저 닮고 싶은 유쾌한 쾌락주의자들의 그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 우주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점 위의 점 위의 점같은 존재다.

그러나 잊지 말자. 내 우주가 사라지기 전까지 나와 당신은 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