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선성공 후행복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이노의 가르침>>

소라언냐 2023. 12. 19. 15:48
반응형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불편했던 이유

 

70만부 달성 후 빨간 표지로 바뀌었다



2023 올해의 판매 1위 책 

2023년 판매 1위 책은 <<세이노의 가르침>>, 2위 <<원씽>>, 3위가 <<역행자>>로 모두 자기계발서들이다.

 

소문이 자자하니 내용이 궁금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공짜여서 읽어봤고, <<역행자>>는 블로그의 책 소개 등을 통해 비슷한 내용이라 알고 있다.

 

두 책 다 자신의 삶이 성공했다는 증빙이 결국 경제적 부였다는 점,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이 성공한 삶의 예가 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 그리고 ‘선성공 후행복’의 공식이 맞다고 주장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왜 불편했을까.



양날의 검 같았던 내용

위와 같은 이유로 거부감이 있었다면, 반대로 작은 일부터 귀신이 되라는 그의 충고는 중용의 도가 가르치듯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라는 내용과 같아 매우 공감이 된다.

 

그리고 중간중간 번뜩이는 통찰력을 보자면 범인은 아님이 확실하다. 

 

또한 흔한 자기계발서 같이 문맥에 맞는 예시만 갖다 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찐한 삶을 통틀어 이뤄온 과정을 썼기에 공감가는 부분도 매우 많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마흔 이상의 중년들은 가르쳐줘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한국만큼 나이가 중요한 사회에서 이제사 종자돈을 모아 해볼까 하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느껴지니. 그리고 이미 나는 그의 삶과 다른 나의 궤적의 중반을 돌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20-30대라면 따라 했을까? 출발점에 선 내게 주어진 가르침이 그것 뿐이라면 그랬을 듯. 그때의 나는 내게 익숙했던 부모님 세대의 공식을 따라했었으니. 

 

 

세이노의 가르침은 자본주의 세계의 게임의 룰을 빨리 알아채 남들보다 빨리, 악착같이 종자돈을 모으고, 은퇴하여,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리면서 살겠다는 FIRE 족의 인생 계획과 매우 닮아 있다. 

 

FIRE 족 카페 내의 내 나이 또래에 FIRE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주된 바탕은 부동산 투자였다. 그저 돈을 넣기만 하면 올라가던, 돈 놓고 돈 먹기로 이룬 부. 누구라도 이렇게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Integrity

나의 신념과 모든 행동이 일치하는 삶의 태도. 세이노가 그렇게 주장했던 integrity. 그가 살아온 궤적과 그의 삶의 키워드 integrity는 과연 온전히 합일됐는가. 

 

스캇 니어링이 세계대전 후 가지고 있기만 하면 엄청난 수익을 가져올 것이 뻔했던 주식을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다며 불살라버렸다는 일화를 읽으면서 얼마나 대단한 신념이 있어야만 그럴 수 있었을까 감동했었다. 

 

책을 읽은 후 그의 인테그리티는 부를 이루는 종자돈을 마련할 때까지는 잠시 접어두고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업을 했을 때 술대접은 절대 하지 않지만 미인계는 썼다는 자가당착같은 주장 등) 가리지 않고 질주한 후, 부를 이룬 노후에사 다독도 하고 기부도 하며 사람 사는 것처럼 사는 것, 그제서야 실행할 수 있는 인테그리티라고 생각된다.  



씁쓸하다

중년의 나는 다른 이유로 젊은 나에게 세이노의 가르침을 따르라 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유일하게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진 자원이라면, 악착같이 부를 이룰 준비로만 귀중한 시간을 쏟아 붓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 재테크라 생각되므로.

 

이제는 작가가 살아왔던 시대와는 또 다른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부를 이룬 노후가 인생의 목표가 되고, 성공의 잣대가 돼야 하는가. 자녀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라 추천하는 부모들의 리뷰 글들을 읽으면 씁쓸하다.

 

그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신혼이었을 때 자신은 일에 몰두해야 하므로 아내도 몰두할 일(?)을 줄 겸 자녀를 출산해 양육에 몰입하도록 했다는 일화. 돈은 내가 벌께 애는 당신이 기르라는... 팀 메이트인가.

 

세이노의 가르침 중에는 분명 시대가 바뀌어도 따라갈 내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미 부도 이룬 사람이 이제는 익명일지라도 이름을 남기려는 일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보여... 무척 씁쓸하다.



피로사회를 사는 우리의 integrity

“성과 주체인 경우 노동을 강요하거나 착취하는 외적 지배 기구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복종적 주체와는 구별됩니다. 외적 지배가 없다는 사실이 언뜻 자유롭긴 하지만 더욱 더 부자유한 상태로 전락합니다. 이른바 자기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자본권력 아래에서 그림자를 추월해야 하는 가망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피로 사회의 자기착취자가 앓는 병이 우울증입니다.” 

- 신영복 선생이 <<담론>>에 인용한 한병철의 <<피로사회>>의 내용

  

 

최근 몇 권 읽은 영 어덜트 작가들의 에세이들을 읽어보면 우리 세대가 이제서야 머리로 이해한 바를 일찌감치 체득해 글로 남겨놓은 작품들이 꽤 많다. 앞으로 우리 시대의 대안도 바뀔 것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이다. 가난했기에,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삶의 최우선 과제였던 내 부모와 작가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과잉의 시대이다. 절대적인 가난은 없지만 상대적인 가난이 지배적인 시대. 

 

 

가난이 디폴트인 시대에 개인의 우아함은 지켜질 수 있는가 <<우아한 가난의 시대 - 김지선>>

우아한 가난의 시대 정말로 생존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없는 극빈의 상황만을 가난이라고 한다면 ‘우아한 가난'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형용모순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

thebrownbottle.tistory.com

 

점점 더 느리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현명한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적게 벌어도 개인의 우아함을 지킬 수 있는 삶. 인생의 행복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내가 하고 싶은, 나의 신념에 맞는 삶을 사는 것에서 오기에. 그것이 integrity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나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시대다.

 

‘나는 누군가’ ‘나는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 수 있다.

 

그렇게 뚜렷이 자신의 주관대로 삶을 살아가면 세상이 그에 반응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