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익숙함에서 발견하는 새로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 내 방 여행하는 법>>

소라언냐 2024. 7. 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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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여행하는 법 (Voyage autour de ma chambre)

by Xavier de Maistre, 장석훈 옮김



이 책은 이렇게 만나게 됐죠

어쩌다가 이 책의 제목을 알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딱 내 스타일의 제목이었다. 내 방 여행이라니... 책의 표지 뒷면의 알랭 드 보통의 추천사를 읽고 생각났다. 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인용됐던 이 책을 나중에 읽어본다고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뒀던 기억이 난다. 책이 책을 추천해 읽고 좋았던 경험이 있어 기대가 된다.

그자비에는 방의 여행자만이 아니었다. 그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훌륭한 여행자이기도 했다. 그자비에의 작품은 심오하고 의미심장한 통찰로부터 출발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이라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는 통찰. 그는 우리에게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고 슬며시 우리 옆구리를 찌른다.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작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님을 소개합니다

Xavier de Maistre(1763-1852)는 1763년 샹베리 (오늘날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인접한 프랑스 사부아 지방의 주도)에서 태어났다. 조용하고 수줍음 많으며, 공상에 빠져 있길 좋아하는 아이였던 메스트르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문학, 회화, 음악 등에 두루 깊은 관심을 나타냈고 자연과학 분야에도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혈기와 모험심도 못지않아 열여덟 살에 평생 직업 군인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몽골피에 형제가 발명한 열기구에 자원하여 올라가는가 하면, 목숨을 건 결투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고향 지방을 점령한 이후 귀향이 어려워진 그는 토리노에 머물다 1790년에 어떤 장교와 결투를 벌였고,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방 안에서 보내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자 쓴 글이 바로 <<내 방 여행하는 법>>이다. 우연찮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에게는 미술 쪽으로도 재능이 있어서 러시아군 장교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복무할 때에는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일찍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먼저 보낸 메스트르는 아내가 죽은 다음 해인 1852년 밤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 <<내 방 여행하는 법>>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 <<아오스타의 나병 환자>> 등이 있다.



약 230여년 전의 작품이라니...

기발한 제목과 책의 표지 디자인으로부터 받은, 왠지 영더덜트 여성 작가의 작품일 것 같다는 추측은 작가 소개글을 보고 산산히 깨졌다. 1790년도에, 그것도 직업 군인이었던 남자 장교가, 당시 법으로 금지되어 있던 결투를 한 죄로 42일 간의 가택 연금 기간 동안 씌여진 책이라고... 고전의 반열에 오름직한 시기에 씌인 책이 아닌가.



책 내용을 볼까요

책 내용을 보자면, 자신이 가택 연금에 처하게 된 경위를 소개하며 법과 관습에 대해 비판하고, 방안의 소품들 즉 의자, 침대 등을 하나하나 고찰하면서 그에 얽힌 추억들을 소개하거나 물건을 매개로 이루어진 공상과 철학,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기록한다.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는 작가였다더니 방 안에 걸려있는 그림들에 대해 급 ‘그림 이야기 해주는 오빠'로 분한 듯 자상하게 그림에 대해 묘사하고 설명해주는가 하면, 자신 주위의 사람들과 애견 로진에 대해서 여러 챕터들을 할애해 글을 쓴다.

 

그리고 의학의 발전에 대해 생각했던 챕터에서의 페리클레스, 플라톤, 아스파시아, 히포크라테스 네 사람간의 대화를 상상하며 남긴 글은 철학적 공상과 사색 놀이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D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형이상학>이라는 챕터였는데, 자신의 존재가 이중적이라 이해한다는 작가는 인간은 영혼과 동물성(플라톤은 그에 꼭 맞게 ‘타자'라 칭했다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고찰한 이 형이상학을 뒷받침해주는 에피소드들을 전해준다. 

여러 관찰을 통해 나는 인간이 영혼과 동물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일지라도 하나가 다른 하나에 완전히 포섭되거나 딱 겹쳐지기도 한다. 따라서 둘을 확연히 구분 지으려면 영혼이 동물성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 나는 이질적인 두 실체가 서로 결합된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동물성이 영혼에 끌려다니기도 하고, 반대로 영혼이 동물성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입각해 보면 한쪽은 입법권을, 다른 한쪽은 집행권을 지닌 셈인데 두 권력은 곧잘 충돌한다. 뛰어난 이들은 자신의 동물성을 조련하는 데 가장 신경 쓴다. 그럴 수 있으면 동물성은 별 말썽 없이 지낼 것이고, 영혼은 동물성과의 고약한 인연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고양될 수 있을 것이다.  



리너스 반 데 벨드의 전시회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마침 전남 도립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리너스 반 데 벨드라는 작가의 유화, 비디오, 설치 미술 전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스스로를 '안락의자 여행자'라고 소개하는 작가의 전시 작품들의 내용은 정확히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책 내용을 시각화한 예술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메세지의 싱크로율이 높았다. 전시회의 소개글을 살펴보자.

리너스 반 데 벨데(b. 1983)는 스스로 ‘안락의자 여행자’라 자신을 소개합니다. 작업실에서 책과 영화, 뉴스와 잡지, 역사와 미술사 서적들, 작가와 위인의 전기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공상적 모험을 떠납니다. 사실에 기반한 자료와 이미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하는 상상력을 통해 반 데 벨데는 자신만의 가상의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 작업으로 잘 알려진 대형 목탄화와 오일파스텔화를 비롯해 최근 확장해 가고 있는 영상, 조각 작업을 망라해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반 데 벨데의 〈나는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2023)라는 작품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문장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 1954)가 그림 그리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났을 때 했던 말입니다. 작가는 여러 색의 빛으로 가득한 자신의 추상화 밑에 마티스의 글귀를 직접 적어서, 빛을 찾아 여행한 20세기 색채의 거장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한편, 이 제목은 문자 그대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자신의 집,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반 데 벨데의 작업은 상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 미술과 언어 등이 충돌하며 긴장을 일으키고 또 서로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삶과 예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다면적 시야를 열어줍니다.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를 통해 여러분은 때로는 터무니없는 공상같지만, 때로는 진지한 예술적 고민을 담은 작가의 내적 모험에 동행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상상적 여행을 통해서,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상상력이라는 무한한 힘이 우리를 어디까지 이끄는지 경험해 보기 바랍니다.
© 2024 아트선재센터

 

 

철학자 한병철이 강조한 머무름이 있는 삶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있던 책이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였는데, 활동적인 삶을 지양하고 사색적인, 머무름이 있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BTS의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이라는 노래

책을 읽은 후 다른 분들의 서평도 궁금해 책 제목을 입력해봤더니 책보다는 BTS의 노래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이라는 곡의 가사와 내용이 많이 검색됐다. 이 노래의 가사 내용 역시 코비드 시기 동안 비대면 정책 때문에 각자 고립되어 있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내용이었는데, 이 책의 내용과 같이 자신의 공간에 있는 것들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지고 되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의 내용이 모티브가 돼 작성된 가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많은 책들과 예술, 노래가 전하는 한 목소리를 들은 경험

가택연금 그리고 코비드 시기의 거리두기.

어찌보면 타인으로부터 자유를 박탈당한 시기이지만 법이, 관습이, 그들이 나의 사유의 자유까지 막을 수는 없었노라고 여유있게 되받아치는 듯한 유쾌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작가의 초대글처럼 나도 진지하게 내 방을 여행해보고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를 돌아보고 내 주위 사람들, 물건들,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소중함까지 새겨보는 여행이라... 예전의 나라면 이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남겼을까나.

 

책의 서평을 남기면서 다시 한 번 작가의 기발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글로 남겨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230여년 전의 작가와 함께 떠나는 내 방 여행. 설렌다.

 

상상력이 넘치는 매혹의 세계여, 그대는 자애로우신 그분께서 현실의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보내 준 존재였다. 이제 그대를 떠날 시간이 된 것 같다.

오늘은 내 운명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내게 나의 자유를 돌려주는 날이다. 그들이 정말 내게서 그것을 빼앗기나 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자유를 박탈하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 것을 두고 내 앞에 항상 드넓게 펼쳐진 이 넓은 세상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 것을 두고 순간이나마 좋아했다면 말이다. 그들은 내게 어떤 곳도 가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그들은 내게 이 우주 전체를 남겨 놓았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이 내 뜻에 좌우되었다.

오늘 나는 자유다. 아니 다시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일상의 멍에가 다시 나를 짓누를 것이다. 이제 나는 격식과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변덕스런 여신이 있어 내가 경험한 이 두 세계를 다시는 잊지 않도록 해 주고, 다시는 이 위험한 연금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내 여행을 끝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까? 나를 방에 가두는 게 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간직한 이 멋진 공간에서 말이지? 쥐를 광에 가두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제 나는 내 자신을 이중적 존재로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상상으로 누리던 즐거움이 그리울 때면 나는 어떤 힘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을 느낀다. 그 은밀한 힘은 나를 인도한다. 그는 내게 속삭인다. 내겐 탁트인 대지와 하늘이 필요하고 고독은 죽음과 같다고 말이다. 채비는 끝났다. 나의 문은 열렸다. 포 가의 널따란 회랑 밑을 거닌다. 수많은 정겨운 유령이 내 눈 앞에서 오간다. 그래, 이건 저택이고, 문이고, 계단이다. 벌써부터 짜릿한 기분이 든다.

레몬을 자르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혀에서 신맛이 도는 것과 같다.
오, 나의 동물성이여, 몸조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