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작가 김훈님을 소개합니다
1944년 5월 5일 서울 출생. 부친 김광주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보좌하며 문서 번역 및 분석 일을 맡았다고 한다. 이어령 박사가 어휘의 달인이라 평가한 그의 문장력은 집안 내력인듯 싶다.
바람이 잠들고,
달빛 스민 바다가 기름처럼 조용한 밤에도,
사각 사각 사각,
그 종잡을 수 없는 소리는 수평선 너머에서 들려왔다.
딱 여수의 고요한 밤바다를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고 몇번이나 무릎을 치며 읽었다. 저렇게 짧은 문장으로 그 밤의 여수 바다를 그려내다니!
집안의 가난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중퇴 후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여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의 기자로 활동했다. 시사저널 퇴사, 칩거 후 2001년 출판한 <<칼의 노래>>가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MBC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소개되며 대중적인 유명세와 함께 출간마다 베스트 셀러를 기록한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의 무협지가 연상되는 장편소설들이 대표작이라지만 내게는 <<언니의 폐경>>으로 각인되어 있던 작가이다. 그 연배 즈음의 한국 남성 작가들의 과한 성적 묘사와 여성혐오가 최악으로 씌여졌다고 기억하고 있던 책이었던지라 그의 문장력을 칭찬하는 글들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기는 한가보다 궁금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여진에 대한 묘사는 여전히 걸린다 -.-)
2000년 가을에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고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고 시작되는 그의 책 머리글에서 그는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이 보일 듯 싶어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고 썼다. 작가는 당시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고, 동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없으므로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라고 썼다. 절절함과 단호함이 단숨에 읽히는 머리글을 읽으니 소설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대가 된다.
이순신 -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듯 이순신 장군은 우리의 영웅 그 이상인, 성웅의 반열에 오른 역사속 인물이다. 책 속의 표준 초상화를 보니 100원짜리 동전에 있는 장군의 모습과 같다. 문장을 쓰는 스타일만큼 온화한 인상이다. 영화 <한산>에서 배우 박해일이 맡은 것이 찰떡이었던 것 같다.
<<칼의 노래>>라는 제목은 위에도 썼듯이 어딘지 무협지 제목같은 느낌이 들어 관심은 없었으나 궁금은 했었다. 주위 몇 남자분들은 소장각이라고 추천했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책이라는 것이 읽어보기도 전에 식상했던 듯. 알지도 못하면서 앞서 읽은 책 한 권으로 후려쳤던 나의 오만을 반성한다.
서른 중반의 이순신은 아들 면이가 태어났음도 알지 못한 채 국경 변방의 여진족을 처리하며 밤에 노루가죽 위해 누우면 몸의 고단함에 뿌듯하고 아침에는 새로운 기운이 차오름을 느꼈던, 칼 찬 자로서의 마땅한 소임을 행해나가는, 자신의 가치와 행하는 일의 합일의 축복을 누리던 젊은 장수였다. 그의 칼은 베어야 할 것을 베었고, 그럼으로써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내는 순결한 칼이었고, 그 시절 그의 칼은 노래를 불렀으리라.
종품이 올라가 통제사가 된 후, 그와 그의 칼에 정치적 계산이라는 것이 필요해진 때부터 장군과 그의 칼은 길상봉과 같은 허깨비, 헛것, 무의미, 종묘사직, 실체가 없는 것들을 베어내지 못함에 울었고, 또 베어진 것들을 보고 또 울었다.
그 저녁에도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병신년에 의병장 김덕령이 장살되었을 때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을 분명히 알았다.
죽을 때, 적들은 다들 각자 죽었을 것이다. 적선이 깨어지고 불타서 기울 때 물로 뛰어든 적병들이 모두 적의 깃발 아래에 익명의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 죽어서 물 위에 뜬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분노와 무력감
현재를 사는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분노와 무력함을 작가는 이순신 장군의 칼을 빌려 썼다고 읽혔다. 매번 정치권은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대한민국을 바꿔보겠다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말한다. 기업도 세상을 더 이롭게 새롭게 바꾸겠다고 광고한다. 언론은 이들이 내뱉는 헛것들을 글로, 미디어로 가공해 패를 나눈다.
기득권. 허깨비들이 판치는 세상. 그런 헛것들을 쓸어버릴 수 없는 무력감. 이순신이 베지 못해 울분에 떨게 한 그 기득권은 오늘날에도 그 자리를 더욱 세련되고 공고하게 다지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 상징성을 만들고 명분을 쌓아 되도 않은 대통령을 세우고, 또 다시 그들의 철옹성을 더욱 높게 올리는 지겨운 반복.
2000년 가을에 등을 졌던 작가의 울분도 느껴지는 듯하다. 저렇게나 멀쩡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자니 혹시 나만 제정신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무력감이 바닥을 칠 때 혹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마저 버린다면 정신 박힌 세상이 보일까 하는 부질없는 희망.
백의종군 후 지휘할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조선수군의 통제사로 재임명되었을 때 장군의 기분이 어땠을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모친의 상도 지키지 못했고, 자신을 기소했고 칠천량 해전을 밀어부쳐 조선수군을 몰살 시킨 권률은 찾아와 다시 전쟁을 치를 방책을 내놓으라 하고. 할 말이 없다던 임금도 통제권을 다 주는 척 하면서도 육군으로 와서 보조하라고 유지를 번복한다.
조정에서의 지원도 없고, 군량도 없고, 하는 일 없는 명의 군대가 와 보고체계만 꼬이고, 수영지를 옮길 때마다 울며 매달리는 백성들… 전쟁이 나면 싸우고 휴전이면 어부처럼 일해 군량을 마련해야 했던 그의 가난한 장졸들.
명량해전을 마친 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공을 세운 후 임금의 조바심은 극에 단듯 싶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한 동시에 장수의 그 용맹이 두려웠으므로. 또한 적장 구루지마의 목을 베어 걸었던 것에 대한 보복으로 막내 아들 면이 죽임을 당한다.
결국은 명과 왜의 강화와 일본 내의 히데요시의 죽음이라는 정치적 상황으로 철수하는 왜군을 끝까지 따라가 처부술 작정으로 노량으로 간 장군은 그의 염원같이 적의 총알에 자연사한다. 소설이었지만 그의 세상의 끝이 그처럼 가볍고 또 고요했다는 것에 안도한다.
균형감 잡힌 역사관을 갖기는 어렵군요
책을 읽으면서 선조의 무능함과 교묘함에 깊은 빡침을 자주 느꼈다. 사극에서 종종 보았던 선조는 무능은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내외 정세가 그렇했고, 임금의 덕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그려졌으나… 어머, 찾아볼수록 아니올시다였다. 무능하면서 시기심까지 많아 그 많은 의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
필요한 것을 취하고 싶으나 가진 것을 내놓고 싶지 않은 욕심. 장수들의 공은 필요하나 그 공이 오롯이 자신에게만 바쳐져야 한다는 임금의 태도. 이미 짚신을 거둬들이며 궁을 떠나 피난 준비중이면서도 종묘사직이 여기인데 내가 어디로 가겠느냐던 이중성.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의 작품들로 유명한 송강 정철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역시도 대하드라마에서는 뚝심있는 문장가로 그려졌었는데, 사실은 선조의 가신이었고, 기묘사화 국문 담당자였다니 충격이었다. 원균도, 행주산성으로 기록되는 권률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찾아볼수록 내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그들이 아니었다. 균형잡힌 역사관을 갖게 되는 것은 묘연한 일일까.
"호남이 없으면 조선도 없다."
순천, 광양, 여수, 해남, 고흥, 거제, 통영. 이제 남도에 3년 넘게 살았다고 소설을 읽는 동안 그 거리들이 쉬이 가늠이 된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임진왜란을 승리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임금도, 조정의 대신들도, 명의 천군들도 아닌 변방의 장수와 호남 백성들이었다. 땅을 일구고, 생선과 미역을 말려 군량을 마련하고, 어선을 끌고 전쟁에 참전하고, 나무를 베어다 배를 만드는 노역까지.
서울에서 여수로 내려오는 길에 광주에서 묵었던 밤 이태원 참사가 생겼다. 참사 다음 날 찾았던 5.18 민주묘역은 남다른 울림이 있었다. 아직도 여순사건 피해 신고를 망설이는 여수의 유족들과 4.3을 입밖으로 선뜻 내지 못하는 제주도와 달리 광주 시내의 분위기는 사뭇 달리 당당한 그 무엇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토록 험한 일을 집단으로 경험했으나 광주는 고립된 채 시민들끼리 연대했고, 끝내 주범을 밝혀냈고, 기어이 보수 정당의 대표가 민주묘지에 추모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 정부와 독립운동 기념 단체들이 각자 따로 기념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보자니 작가가 이순신 장군에 빙의해 썼던 그 무력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내 나라가 이렇게 번듯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 없는 듯한 이 무력감.
지금을 사는 국민들에게 주어진 칼은 투표이지만 여러 미명으로 표를 가르려는 시도를 단호히 쓸어버리려면 역사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긴다. 한 칼에 허깨비들을 쓸어버리고 지킬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2024년 8월 15일 제 79주년 광복절에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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