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책읽기

천상천하 유아독존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 제임스 도티>>

소라언냐 2024. 9. 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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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무려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스님이 추천한 책

엥? 마술가게 무엇?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의 추천사와 더불어 BTS의 추천 도서라는 후광이 있어 그렇지 독서모임에서 추천받지 않았다면 선뜻 고르지 못했을 제목과 표지 디자인 ㅋㅋㅋ. 자세히 보니 그림 속의 남자가 뭔가를 잔뜩 끌어당겨 흰 의사 가운에 붙인 듯한 그림이다. 끌어당김의 법칙 (Law of attraction)을 형상화한 그림인 것인가.

 

대략적인 내용을 훑어보니 예전에 읽었던 론다 번의 <<시크릿>>을 많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그게 벌써… 10년도 훨~씬 넘은 얘기가 되었나 보다. 어떤 경로로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어쨌든 이후 나의 독서와 영성 관련 대장정이 시작된 것도 딱 <<시크릿>>이라는, 그 이상한(?) 책 덕분이었다. 

 

 

작가 제임스 도티님을 소개합니다

작가는 뇌와 심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스탠포드 대학의 신경외과 의사. 조건 없는 친절로 마술을 선물 받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삶의 경로가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 사람, James R. Doty 박사. 현 ‘연민과 이타심 연구 및 교육 센터(CCARE)’의 창립자이자 소장.

 

책의 내용에도 나오지만, 이 센터는 ‘나의 종교는 다름 아닌 친절입니다.’ 라는 말로 내 마음의 등불을 확 켜준, 달라이 라마가 티벳 조직이 아닌 곳 중 가장 많은 후원을 한 사실로도 유명하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구를 하는 센터도 있나 싶었지만... 행동 과학자, 생물의학 연구자들과 함께 인간의 긍정적 자질인 연민, 친절, 사랑 등의 생리적/심리적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스탠포드에 이런 불가능할 것 같은 센터를 이루어낸 도티 박사님께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책 내용을 볼까요

작가 본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가정 환경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함께 한줄기 빛과 같았던 루스 아주머니와의 만남, 그리고 그녀에게서 배운 진짜 마술 ‘마음 챙김'과 ‘마음으로 그려보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처럼 본인의 인생을 맘대로 요리할 마술을 배웠지만 마술의 핵심 기술인 ‘마음 열기'를 놓치고 오용하면서 성공하고, 오만해지고, 실패하지만 종국에는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본연의 궤도로 돌아오게 되는 여정에 자연스럽게 루스 아주머니 마술의 실체를 녹여 보여준다. 

 

by James R. Doty

인생 책 중의 한 권이 됐어요

뜻하지 않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책을 시작하며 독서모임 회원들도 영문판 원서를 찾아보고, 딸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나 역시도 문득 생각나는 건 내 어린 조카들. 이런 책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살면서 의지가 될까 또 그렇게 변화할까 싶은 마음. 나는 이제사 알게 된 걸 말랑말랑한 나이의 조카들에게 빨리 알려주고 싶은 마음. 

 

독서모임의 단톡의 이런 내용들을 읽고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아 부모 마음이 이런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렴풋이 내 엄마 아빠의 마음이 떠올랐다. 인생 중간중간의 고비를 맞닥뜨린 자식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당신들도 모르겠는 인생을 어떻게 조언해야 할지, 갈피도 잡을 수 없었던 막막한 때. 그저 지켜봐 주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을 때. 

 

엄마 아빠의 진심이 담겼지만 덤덤하게 건네던 조언에 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고 원망하던 딸. 도티는 그런 막막한 때에 그도, 그의 부모도 성장한 경험을 들려준다. 아… 나는 정말로 사랑을 많이 받은 딸이었구나…



성악설, 가스라이팅이 아니었을까

성악설, 이기심이 사피엔스 종특이라고 배웠고 그래서 사람은 이타심을 학습해야 하며, 종교로 교화해야 한다고 믿었었는데 어쩌면 내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본시 이타적인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잘못된 이타심일지언정.

 

이기심의 발로로 악착같이 끌어모으면서도 한켠으로 느끼는 죄책감,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 이건 아니다’라는 내면의 소리. 그건 학습된 결과일까? 아니면 타고난 본성일까?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건 결국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 아닌가? 물론 저변에는 사랑 받겠다는 이기심이 있는 잘못된 이타심일지라도 나를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마음 또는 뉴스에서 가끔 만나는, 조건 없이 남을 도운 후 사라진 익명의 누구들.

 

마치 심장마비 환자의 심장에서 공히 많이 눈에 띄였다는 결과 때문에 누명을 쓴 콜레스테롤처럼, 우린 아마 선택한 정치/경제 체계 때문에 우리가 이기적인 존재라고 누명을 쓴 줄도 모르고 곧이 곧대로 우리는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믿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몸을 병들게 한건 지방이 아니라 당이었는데...

흔히 가장 강하고 가장 무자비한 존재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설을 분석하면서 많은 이들이 찰스 다윈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사실 장기적으로 보자면, 가장 친절하고 가장 협력적인 존재가 살아남는다는 분석이 합당하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보살피고, 또한 우리에게 의존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어린 존재를 보살피고 양육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다.

 


나의 상상력을 믿어야 할 때

<<시크릿>>을 처음 읽었을 때 처음엔 ‘이게 말이 된다고?’ ‘진짜 사람들이 이런 걸 믿는다고?’ 하며 읽다가 책을 덮을 때에는 막연히 뭔가 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던 기억.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나는 팔랑귄데…’ 하면서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나의 믿음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기억. 자기 확신이 강한 남편의 확신에 묻어 가려던 기억… 여러가지 기억들이 동시에 생각난다.

 

이런 종류(?)의 책들에 대한 나의 태도가 항상 그랬다. 될 거 같아 설레면서도 왠지 위험하다는 막연한 불안감. 지금 생각하면 ‘당최 뭐가 위험해지는건데?’ 싶지만 암튼 그랬다. 

 

 

한량, 돈을 벌어오지 않는 사람, 백수는 자의든 타의든 손가락질 받는 환경에서 자랐으니 항상 현실 감각이 있어야 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뒤처지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을거라 배웠기에 어릴 때엔, 그리고 최근까지도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거나 공상을 한다는 건 뭔가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이며, 뭔가 ‘나는 그러면 안되지’ 하는 류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나의 공상, 상상력을 믿어야 할 때가 왔다. 나의 힘을 믿지 않고 상상하지 않으면, 아니 내가 직접 현실을 만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현실을 만들어버릴 때가 왔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이런 확신이라도 없다면 숨쉬고 살겠나. 나를 믿고 상상해서 손해볼 게 뭐람. 깨달은 석가모니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다. 현인들도, 심지어 현대의 과학자들도 다 내가 만들어내는 세상이라지 않나. 내가 원하고 바란 일들은 지금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이미 이루어졌다.

 

 

마음열기는 일원론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

“마음 속에서 너 자신을 그리는 방법은 두 가지란다. 하나는, 마치 네가 너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하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네 눈을 통해서 그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하는 방법이 있어. 네가 백만 달러를 가지고 있을 때 세상이 너한테 어떻게 보이는지를 상상해보려무나. 백만장자의 눈으로 세상을 그려봐.” 
“그걸 반드시 눈으로 보아야 하고, 그런 다음에 그걸 따라가야 한단다.”
뇌는 강렬하게 상상한 경험과 진짜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의 뇌를 속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생하게 이미지를 떠올리고 백만장자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대체 뭐가 달라질까? 그저 내 머릿속의 상상일 뿐인데...

 

여기에서 개개인의 세계관에 따라 신뢰 여부가 정확히 갈린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그러니까 이원화된 세계관을 가졌던 내겐 저 이야기는 정신나간 소리처럼 들렸을거다. 뭔가 나사 하나 풀어진 사람들이나 믿을 소리.

심상화를 통해 뇌를 속인다는 것은, 그로 인해 내가 원하는 것을 당길 수 있다는 도티 박사의 마술은 오직 나와 세계가 동근원적이라는 일원론의 세계관을 가져야만 통할 수 있는 얘기였다. 

“이 가짜 엄지손가락 속임수만 해도 사람 마음이 우스운 것이라서 통하는 것이거든. 마음이란, 보게 되리라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것만 본단다.”

 

 

그러나 이제 세계와 내가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지금 - 물론 나는 아직도 머리로 이해가 아닌 ‘체험’을 구하고 있지만 - 이제 이 세상이 나의 자각몽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내가 지어낸, 나밖에 느낄 수 없는 세계.

 

내가 -나라는 관찰자가- 소멸하면 이 온 우주가 사라질 것이고, 그 이야기는 반대로 나만 깨달으면 온 우주가 깨닫는다는 사실. 더불어 내가 있다고 믿었기에 그것이 그 곳에 있게 되는, 이 기막힌 마술. 내 꿈속인데 무얼하면 어떠랴. 그러나 꿈일지언정 악몽은 꾸고 싶지 않다. 즐거운 꿈, 정의로운 꿈을 꾸어야지.

나는 내 생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나 자신과 그 생각을 분리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다.
에너지는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하지만 에너지는 형태를 바꿀 수 있으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먼저 결과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과 그 결과에 집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다음, 무엇보다 힘들게 배운 교훈은 정확하게 내가 실현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의도 안에는 엄청난 힘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