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적 살림살이

미니멀리스트의 식기 건조대

소라언냐 2024. 2. 2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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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전 3대 이모님

식기 세척기, 로봇청소기, 빨래 건조기.

'우리 집 이모님'으로도 불리는 이 새로운 가전기기들에 대한 소문은 한 번 써보면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체험수기, 간증들을 통해 수시로 접하고 있어요.

 

 

제가 한 15여년 전에 사용해봤습니다

호주에서는 어지간한 아파트 렌트를 얻으면 오븐, 식세기와 빨래건조기는 빌트인으로 장착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full-time 출퇴근을 했던 당시에는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당시 한국에서 유행했던, 물걸레 달고 돌아다니면 청소해주는 마미로봇(아~ 추억은 아롱아롱)을 주문해 사용했어요.

 

물론 지금 나오는 가전제품들과 기술력의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저는 세가지 가전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제 후기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도 훨씬 더 된, 2인 가구의 살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욥 : )

 

 

- 식기 세척기

호주라서 양식기 세척에 유리하게 나온 건지는 몰라도 한식 그릇 세척에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어요. 밥그릇은 미리 불려서 넣어줘야 했고, 와인 잔처럼 얇은 유리 제품은 다른 그릇과 작동시 부딪혀 깨지지 않도록 공간을 여유있게 잡아주거나 아예 따로 손설거지를 했어야 했어요.

 

기름진 설거지나 음식물 찌꺼기가 많을 수 있어 한번씩 애벌로 물세척을 해서 넣을 때는 '그냥 설거지를 하는게 빠르겠는데...' 싶은 생각도 종종 들었구요. 최소 세척 시간은 40여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세척을 마친 다음 검사를 했을 때 여전히 그릇에 찌꺼기가 고인물이 있거나 하면 쫌 짜증이 났죠. 결국 손님을 초대했을 때나 종종 사용했지 거의 냄비 수납장으로 썼던 기억이... 

 

 

- 빨래 건조기

제가 지냈던 시드니의 아파트는 한국처럼 샷시창으로 막혀 있지 않아 빨래가 날아갈 수 있어서인지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 건조대를 두고 사용하지 못하게 했었어요. 누군가가 리포트하면 공문이 날아오고, 그래도 계속 사용하면 벌금을 내야 했죠.

 

호주 햇빛이 그렇게나 쨍쨍한데도! 그 비싼 전기세를 내며 울며 겨자먹기로 건조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제 옷들이 거의 면, 마 등의 천연소재가 많았거든요. 조금 온도를 높게 돌렸더니 모든 티셔츠가 크롭탑이 된 상황 ㅜ.ㅠ 

캐시미어 니트도 하나 말아먹은 귀한(?) 체험 후 니트류는 실내 건조를 했다는요...

 

또한 건조기에서 빨래는 꺼낸 후 빨리 개어 수납하지 않고 바구니에 방치할 경우, 다른 사람이 빨아야 하는 빨래인 줄 알고 다시 돌릴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 로봇 청소기

대망의 로봇 청소기는 무려 한국에서 수입해온 고급 가전이었기에 저는 자발적으로 마미로봇의 수발을 들었어요. 외출 전 아무리 바빠도 식탁 의자들을 모두 식탁위로 올려두고, 카펫도 말아두는 등... 마미로봇님이 울집을 종횡무진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꼼꼼히 모든 물건들을 공중부양 시켜두고 외출했죠.

 

그런데도 어떤 날은 물걸레 상태를 확인해보면 쓸고 돌아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깨끗한 상태로 구석에서 쿵쿵 박으며 공회전하고 있는 마미와 조우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어요. 이걸 확 갖다 버려... 말어... 요즘은 알고리즘이 많이 개선됐겠죠?

 

 

식기 건조대라도...

식기 세척기의 성능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저는 손 설거지 후 떨어지는 물기를 말릴 정도의 용도로 스테인레스 스틸+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건조대를 구입해 사용했어요. 사이즈는 대략 전자렌지 크기 내외였구요. 그림 그려지시죠? ㅎㅎ

 

이것도 만족스럽지 못한게...

- 일단 자리를 많이 차지해 미관을 해칩니다.

- 물받이 트레이에 물기가 상해 물곰팡이가 자주 생겨 이를 예방하기 위해 트레이를 따로 청소해야 합니다.

-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로 된 망도 마찬가지로 물곰팡이에서 자유롭지 못해 칫솔로 망 사이사이에 생긴 곰팡이를 세척해야했고요,

- 사용하는 그릇들을 건조대에서 그냥 말려있는 상태에서 집어 사용하게 되니 수납장에 정리가 잘 안되고 계속 나와있어 거슬려요.

 

 

그리하여 최종 낙점된 제 식기 건조대는요

짜쨘~ 울 집 그릇의 2/3가 총출동! :D

 

린넨 소재의 타올 두 장이예요.

 

 

평소에는 두 사람 식사가 단출해 저 타올도 반으로 접어서 사용하면 충분하고요,

손님 초대 등을 해서 설거지가 많을 경우 두 장을 다 펼쳐서 사용합니다.

 

장점들을 자랑해보자면,

- 팝업 건조대(라고 불러줍니다)라 사용하지 않을 때는 곱게 접어 서랍에 보관이 가능하므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요. 제겐 가장 큰 장점이예요.

- 그릇 양에 따라 적절히 반 장부터 두 장까지 사용 가능한 유연함

- 그릇의 물기를 천이 흡수하면서 말려주므로 생각보다 빠른 건조력

- 가격이 많이 많이 착합니다

- 좀 많이 사용했다 싶으면 과탄산소다를 푼 물에 수건 등과 같이 담갔다 세탁기에 돌리면 되니 유지도 간단해요

- 에너지 효율은... 에이~ 말해 뭐함

 

 

나를 둘러싼 물건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다죠

최인철님의 <<프레임>>에서는 우리가 프레임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와 다양하게 프레임을 적용한 예들을 설명하는데,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에 대한 언급이 있어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소유하거나 주위에 둔 물건들이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나 개인의 생각이나 판단의 틀을 제공하고 결정하는 프레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얻게 됐던, 또 정리를 통해 경험했던 안정감과 해방감의 실체를 알게 된 것 같아 반가웠고, 물건 선택에 더욱 신중해질 수 있었달까요.

 

 

글이 길어졌어요.

우리, 다른 건 몰라도 내 집안 살림만큼은 내가 주도적으로 통제하며 살고 있다는, 소소한 행복감을 자주 느끼고 살아요 : )